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여느 때와 다름없는 10월 초의 평범한 오후, 87분서 수사반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검은 머리칼을 뒤로 묶어 올리고,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은 창백한, 검은 외투에, 검은 구두를 신고, 검은 가방을 들고 있는, 마치 죽음의 화신처럼 보이는 여자, 버지니아 도지이다. 그녀는 38구경 권총과 니트로글리세린이 담긴 병으로 형사들을 간단히 제압한다. 자신의 남편이 감옥에서 죽게 만든 스티브 카렐라를 죽이겠다고. 복수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여자란 굉장히 위험하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으므로,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사를 위해 외근 중인 카렐라 형사를 기다리며, 그렇게 87분서 수사반의 모든 형사가 그녀의 인질이 된다. 건장한 남자들이 고작 여자 한 명 당해내지 못할까.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니트로글리세린이다. 폭발하면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카렐라를 기다리며 형사들은 인질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각자의 성격대로, 캐릭터에 맞게 머리를 굴려 티나지 않은 묘안을 짜내려고 한다.

 

    

 

 

같은 시간,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카렐라 형사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고 그녀와 수사반에서 저녁때 만나기로 약속을 한 뒤, 자살로 위장된 밀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중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형사의 아내는 시간에 맞추어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수사반으로 향하고, 카렐라는 아내와 축하 파티를 할 생각에 들떠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 수사반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렇게 인질극과 밀실 살인 사건 수사가 두 개의 이야기로 따로 진행이 되는데, 에드 맥베인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스토리를 끌고 간다. 밀실극의 대부분이 항상 알고 보면 단순한 트릭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이렇게 인질극과 병행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밀실극 자체에 재미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256페이지짜리 짧은 분량이지만, 이야기는 밀도있게 진행되고, 다음 장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집중력을 높여준다. 제목의 어감이 좀 어려운 편인데, '쐐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의미를 각각 인질극과 밀실트릭에서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고, '살의'라는 것이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표출내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경찰 소설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데, 『경관혐오』가 나온 1956년부터 시작되어 2005년의 『Fiddlers』까지 무려 50년간 이어진 시리즈라고 한다. 이번에 출시된 『살의의 쐐기』는 1959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만약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던 시대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겠지만, 현재 상태로도 매우 매력적인 작품 임에는 틀림없다. 추리 소설이 복잡한 트릭과 엄청난 반전이 있어야만 훌륭한 작품인 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인물 관계도 복잡하고, 다중 플롯으로 어렵게 꼬아놓은 작품 들의 홍수 속에,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지만 매우 밀도깊은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이야말로 진정한 고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 백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됐지만, '경관혐오'부터 최근에 출시된 '아이스'까지 차례대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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