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악몽인 것만 같았다. 절대 깨지 않는 악몽.
나와 우미에의 하나뿐인 딸, 저 홍갈색 눈동자. 가여운 요리코, 죽은 우리 딸. 누구보다 사랑했던 딸이 죽어서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관 속에 누워 꼼작도 하지 않는다.
요리코 내 딸, 내가 알았던 요리코, 내가 몰랐던 요리코.
관 속의 싸늘한 몸은 대체 어느 쪽 요리코지?
14년전 교통사고로 아내는 하반신의 모든 기능을 영원히 잃고, 배속에 있던 아들도 잃어버린다. 이제 니시무라 부부에게는 외동딸 노리코만이 행복의 전부이다. 그런데, 17살짜리 딸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살해당했다고 한다. 자, 당신이 니시무라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엄청난 불행을 겪으면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일은 없겠지..싶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작품의 시작은 딸을 잃어버리고 분노에 차서 범인에게 복수하는 아버지의 수기로 진행된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물론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고, 피해자의 부모가 복수를 하는 게 옳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만큼의 상황에 공감은 되었다는 얘기다. 실패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던 그의 완벽한 계획, 스스로 '페일 세이프' 작전이라 부르는 그 작전은, 만에 하나 실수fail가 있더라도, 다시 안전safe해진다는 의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복수 후에 자살하려던 그는 살아남고, 수기를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된다.
재조사가 진행이 될 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보여지는 것 이면의 숨겨진 진실들이다. 완벽해 보이는 '페일 세이프' 작전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고, 남겨진 수기에서 감춰진 비밀이 밝혀진다. 이야기는 촘촘하고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마지막 반전은 쿵.하는 울림을 남긴다.
"니시무라씨는 어떤 분인가요?"
"아내를 끔찍히 위하는 남편이에요." 다에코가 현재형 어미에 힘을 주어 말했다. "마치 아내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는 듯 헌신을 다하는 분이라, 그런 사랑을 받는 부인은 행복한 분이에요."
"요리코에게는 어땠나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죠."
"그게 끝입니까?"
다에코가 순간 실눈을 떴다.
"왜요?"
"니시무라 씨 수기와는 반대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버지.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그랬거든요."
이야기가 아직 중반이 넘지 않았을 때, 무심코 스쳐갔던 다에코와 린타로의 대화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문득 이 대목이 다시 떠올랐다. 단순히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니시무라에 대한 대화일 수도 있지만, 읽는 순간 뭔가 이질감이 들었던 대목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대화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는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에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