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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평점 :
"하지만 기억해둬라. 세상 일을 안다고 해서 인생이 편해지는 건 없어. 아니, 십중팔구는 인생을 더 어렵게 만들지."
"상관없어요. 저는 알고 싶어요."
언젠가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하는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고서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였는데, 당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더라. 그로부터 무려 10여년 이나 지난 지금, 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단 한 권의 소설!이라는 카피를 걸고 나온 책이 있다. 바로 '마르첼로 시모니'의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이다. 감히 '장미의 이름'에 견줄만한 책이 있을까 싶지만, 고딕풍 지적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오랜만에 머리가 즐거워지는 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비슷한 장르의 책들이 한참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지만, '지적 스릴러'라는 장르는 말처럼 쉬운 종류는 아니다. 작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엄청난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자료조사가 밑받침되어어만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꼼꼼한 고증이 없다면,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각주들을 참고 해가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허구의 세계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잘만하면 독자들이 깜빡 속아넘어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특정한 한 시기에 대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이므로, 가상의 이야기지만 정말 '진짜'같은 리얼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우리는 태생적으로 수수께기에 매혹되는 독자들이다.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각 장소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책에 대한 수수께끼는 프로방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으로 나타나는데, 꼼꼼한 주석들을 참고해야 하지만 인물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만한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멋지다.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 책임감과 위기를 불러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에 대한 욕망을 포기 할 수 없다면, 바로 이 책에 도전해야한다.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냐시오는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덩달아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테르 벤토룸>에 대한 집착이 그를 유혹과 두려움에 무감각한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우테르 벤토룸>이라는 희귀도서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을 가지고 있던 비비엔 신부가 가면을 쓴 한 무리의 기사들에게 쫓기다 골짜기로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스토리는 그로부터 13년 후, 비비엔의 친구이자 유골상인인 이냐시오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데,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비비엔 신부의 이름이 언급되고, 귀족 가문 출신의 백작이 희귀도서를 찾아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하면서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냐시오와 함께 모험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 윌라름과 우베르토의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다. 두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고, 가지고 있는 사연이 흥미로워 캐릭터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만 윌라름과 우베르토에 대한 캐릭터성은 명확한데 비해, 정작 주인공인 이냐시오라는 인물은 정확히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않고,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이 될 뿐 구체적이지 않다. 정의로운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것 같고,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와 반대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가 왜 그랬는지는 모험의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다. 아하, 이런게 바로 반전의 묘미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는 정말 엄청나다. 치밀하게 구성된 거대한 음모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이 책은 마르첼로 시모니가 구상중인 지적 스릴러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3부작의 두 번째 소설인 『연금술사의 잃어버린 도서관』이 얼마전에 현지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두번째 작품도 어서 빨리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냐시오와 그의 일행들이 펼치는 또 다른 모험의 여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빨리 두번째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