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의 리스트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김도연 옮김 / 레드박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늘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어, 난 내가 예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남자들이 물끄러미 응시하며 그 속에 푹 빠져 헤엄치고 싶어 하는 푸른 눈을 갖고 있지도 않다. 모델 같은 몸매는커녕 물렁물렁한 살들로 둘러싸인 저주받은 몸매의 소유자...긴 문장을 읊조리며 깊은 숨을 내쉬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내겐 없다...나는 옷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알고 있지만 조는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딱 한번, 내게 아름답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20년도 전에, 내가 스무 살 초반 무렵이었을 때다. 당시 나는 아주 예쁘게 차려 입고 있었다...그는 나와 자고 싶어 했다. 옷이 예쁘다고 했던 그의 칭찬은 옳았다.

참으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늘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사랑이 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늘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첫문장으로 그레구아르 들라쿠르는 나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버렸다. 남자는 여자와 자고 싶어서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겐 내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진실을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사랑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거짓말을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재능이 있으니 멋진 삶을 살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인생을 바꾸는 건 책에서나 가능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면 그제야 엄마도 거짓말을 한거라는 걸 알게 된다. 삶이 거기서 거기이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평범한 삶이 대부분이라는 걸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엄마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마흔일곱의 평범한 주부인 조슬린은,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어릴적 패션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지금은 작은 수예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의 삶을 꾸려갈 만큼 컸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은 돈을 벌어 차를 사고, 평면 티브이를 사는 걸 꿈꾸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릴적 꿈꾸던 그런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남편을 사랑한다.

 


조는 그랬다. 단어들의 섬세함과 가벼움, 미묘함을 잘 알지 못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그는 추론보다 요약을, 설명보다 그림을 더 좋아한다. 형사 콜롬보 시리즈도 아주 좋아했다. 그건 살인자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어들을 무척 좋아한다. 긴 문장과 길게 지속되는 탄식,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추고 있는 단어들을 좋아한다. 혹은 그 단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취향이 다르고, 사고 방식이 다르고, 지향하는 꿈이 다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얼굴에 드러난 세월과 꿈에서 멀어지게 하고 침묵 속에서 그들을 가깝게 만든 시간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모든 것을 갖춘 남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남편을 선택하겠다고, 그에겐 자신이 필요하니까 언제까지나 그의 곁에 있겠다고.

 

  


그러던 어느날 조슬린은 우연히 구입한 복권에 1등으로 당첨이 된다. 당첨금은 무려 1800만 유로. 그녀는 거액의 돈이 현재의 만족스런 이 삶의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고민 끝에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즈금의 삶을 지키기로 한다.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 모든 것을 잃게 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숨겨둔 수표를 믿었던 남편이 훔쳐서 떠나버리고 만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복권 당첨자에 대한 뉴스 기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복권에 당첨하면 해당 사업부에 가서 신분증 확인 후 지급을 받으면서, 심리치료사를 함께 소개해준다고 한다. 왜 그럴까?

가끔 돈은 사람을 돌게 만들곤 하니까. 범죄, 살인 사건의 대다수는 바로 돈이 원인이지 않은가. 탐욕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걸 일깨워주고, 우울증에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첨금 지급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적인 부분인 것이고.

 

자ㅡ 그게 바로 이 돈이 나를 두렵게 한 까닭이다.
그게 바로 내가 믿을 수 없는 일을 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게 바로 흥분을 애써 참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돈을 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만일 내가 남편에게 카이엔을 선물한다면 그 차를 타고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이들의 꿈을 실형시켜 주는 사람은 그들을 파괴할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오산은 아니었다. 난 이 돈이 우리 두 사람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직감했다. 불처럼 활활 타올라 작열하는 혼돈이 오게 될 것이라고. 피부 깊숙이에서 이 돈이 선을 행할 수 있다면 악 또한 행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사소한 것들이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것들로 변해가는 방식을 사랑하고, 소박하고 편안하며 다정한 자신의 집을 사랑했던 그녀. 다음 해 봄을 위한 조와 자신의 꿈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던 그 삶을 사랑했던 그녀였다. 자신의 사랑이 튼튼한 제방이고, 뛰어넘을 수 없는 울타리라고 믿었던 그녀는, 남편의 배신에 충격을 받는다. 남편이 자신의 삶을 파괴해버릴 거라곤 꿈에서조차 감히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200페이지짜리 얇은 이 책은, 정말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뻔한 파국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이들의 심리와 사고방식이다. <긴 문장과 길게 지속되는 탄식,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추고 있는 단어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47살의 아줌마라니.. 상상이 되는가? 그녀가 엄청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되고 나서 작성하는 리스트 중 몇개만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소박한 리스트>
조와 함께 바탕스 떠나기, 섹시한 빨간 속옷 사기, 1800만 유로에 당첨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

<광기의 리스트>
수예점을 그만두고 패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나딘을 위해 런던에 아파트 한 채 구입, 90C컴으로 만들기..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거 같다. 수표를 훔쳐 그녀를 떠난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겨진 조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문체는 가볍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스토리는 결국 평범한 부부가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지만 그다지 어둡지만은 않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카피라이터 출신의 작가라서 그런지, 단어 표현들이 정말 괜찮다.


아래는 조슬린이 작성한 마지막 욕망의 리스트이다.

 

<나의 마지막 리스트>
미장원에 가서 매니큐어를 칠하고 제모하기, 야바위꾼 같은 아들을 위해 은행 계좌 만들기,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 100만 유로 주기...

 

'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이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마지막 멘트는 쓸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꿈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경고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허황된 꿈에 부풀어 로또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욕망의 리스트'를 꿈꿔본 적이 있지 않은가.

만약에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나는 우선 이 지긋지긋한 회사부터 때려치우고 서울을 떠나고 싶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생각할 거 같지만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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