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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이제 조니는 그 모든 것,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배웠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됐다. 신은 사람들의 고통에 신경 쓰지 않는다. 적어도 어린 아이들의 고통에는, 정의나 인과응보, 지역 공동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웃은 서로 돕지 않았고, 착한 사람들은 보상받을 수 없다. 그 모든 말이 헛소리였다. 교회, 경찰, 엄마, 누구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할 힘도 없었다. 1년 동안 조니는 자신이 혼자라는 새롭고도 냉엄한 진실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단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힘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고, 믿음이란 엿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한때 밝게 빛나던 그의 세계에 이제는 차갑고 축축한 안개가 드리워졌다. 그게 바로 인생이자 새로운 질서이다. 조니에게는 자신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길을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며, 과거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13살짜리 소년 조니는 세상을 일찍 깨우친다. 세상에 안전한 곳이란 없으며,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1년전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이 사라진 뒤,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술과 약에 취해 산다. 아빠의 동업자인 켄은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폭력을 휘두르며 괴롭힌다. 경찰은 1년이 지나도 여동생을 찾아주지 못하고, 그는 지도를 만들어 직접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동생을 찾아 헤맨다. 그는 늘 다짐한다. '난 강해질 거야'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는 무시해버리려고 이를 악문다.
사람들은 선하지 않다. 경찰이 한 그 말은 옳았다. 조니는 셀 수 없이 많은 담장과 창문 너머를 들여다봤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집의 문을 두드렸고, 옳지 않은 일들을 목격했다. 보는 사람 없이 자기들만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봤다. 아이들이 마약을 하는 것도 봤고, 노인들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는 것도 봤다. 한번은 속옷만 입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목사가 흐느껴 울고 있는 아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도 봤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조니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미친 사람들도 평범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매사에 신중하고, 영리한 이 어린 소년이 가여우면서도 대견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이 어린 소년을 이렇게 조숙하게 만든 세상이,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의 현실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이 책의 커다란 줄기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그래서 죽었는지, 납치된건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쌍둥이 여동생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년의 가족 곁에서 1년 동안이나 그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헌트 반장이 있다. 너무 일에만 매진하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은 돌보지 못해 아내가 떠나고, 아들과의 사이는 소원해진, 경찰로서는 유능하지만 아빠로서는 엉망인 헌트 반장. 냉정해야할 경찰은 피해자의 슬픔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부모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아가며 고집스럽게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매일 밤 켄이 죽길 기도했어요. 가족이 집에 오고. 약을 끊고, 켄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길."
"난 켄이 우릴 두렵게 만든 것처럼 자신도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길 원해요. 무력하고 두려운 게 어떤 느낌인지 켄도 알길 원해요. 그리고 더 이상 우릴 건드릴 수 없는 곳으로 켄이 가버렸으면 좋겠어요...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조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분노가 치솟으면서 격분한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앨리사가 집에 오지도 않았고, 아빠도 오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집이 따뜻해지지도 않았고, 켄이 와서 엄마를 다치게 하는 걸 막아주지도 않았어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어요. 엄마가 내게 그렇게 말했잖아요. 기억나요?"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실종된 여자 아이를 찾는 경찰과 무너진 가족의 이야기는 쓸쓸하다. 범인을 찾고, 범행과정을 그리는게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 사회가 숨기려는 진실에 도전하는 어린 소년의 진정성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그런 작품이다. 소년은 경찰 조차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그것은 오로지 그의 진심어린 집념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이면서. 평범할 수도 있던 '사고'가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어떻게 '사건'으로 바뀌게 되는지...추악한 인간들의 마음, 다양한 군상의 용의자들의 모습.. 너무 일찍 성숙해버린 아이와 전혀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을 보며 위선에 둘러싸인 우리의 실체를 돌아보게 된다.
'악은 인간의 마음에서 자라난 암과 같아.' 라는 극중 인물의 대사처럼, 우리들 마음 속에 내재된 악이란 존재는, 표면상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섭다. 그들은 멀쩡한 얼굴을 하고, 멀쩡한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내 가족을 위해서, 내 명예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짓밟으면서. 무서운 세상 아닌가. 우리는 모두 13살짜리 아이만큼의 진심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고 있는가. 이 따위 세상에 믿음이란 엿 같은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건데 말이다. 가슴 한 켠이 싸하다. 쿵, 하고 무거운 돌덩어리가 가슴에 얹혀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