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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자를 사냥한다 ㅣ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1
배리 리가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8월
평점 :
"정말 중요한 건, 범인이 아주 잘 융화되는 사람이라는 거야. 한마디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거지. 바로 그런 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기술이야. 그들은 우리가 다가가는 걸 절대 알지 못해.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우리는 인간처럼 보이는 거지."
겉으로는 평범하고, 사교적이고 거기다 매력적이기까지 한 얼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내를 읽기 힘든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얼굴을 뉴스나 신문에서 보면, 그가 거리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마음이 더 불편해지곤 한다. 겉으로 봐서는 인간과 괴물을 도무지 가려내기 힘든 세상이란 얘기도 될 것이다.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고 했던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처럼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21세기 가장 악명 높은 연쇄 살인마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무려 123명을 살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십대 소년이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피해자들에게 시달리고, 이웃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니 비뚤어지고... 결국은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주인공 재즈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자기 자신과 싸우며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재즈는 이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것이 두 개 있었다. 오직 그 두 가지만이 무서웠다. 그 중 하나는 마을 사람들이 재즈를 지켜보면서, 그는 저주받고 태어나 살인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결국에는 아버지처럼 연쇄 살인범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 사람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자신의 아들에게 어릴적부터 살인의 기술과 피해자의 심리에 대해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당연한 것을 교육시키듯이 가르치는 빌리는, 재즈가 자신만큼 엄청난 살인자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 교육 덕분에 자연스레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자연스레 조정할 수 있는 17살 소년 재즈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살인자를 직접 찾으려고 한다. 여자친구인 코니와 친구인 하위와 함께.. 조금은 어설프지만 말이다.
10대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코니와 하위는 어른 만큼이나 재즈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은 많아. 연쇄 살인범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다 연쇄 살인범이 되는 건 아니야. 이 세상에 애들이 자라서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지침서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하는 코니덕분에, A형 혈우병 환자인 하위 덕분에, 재즈는 인간성을 읽지 않을 수가 있으니까.
"아버지가 현재의 나를 만드셨어.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마찬가지야. 너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을 거야, 코니"
"우리 부모님 역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셨어. 그게 어떻다는 건데? 우리는 부모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영향을 받기도 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도 받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는 거야."
3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라 1부인 『나는 살인자를 사냥한다』는 주인공 재즈와 아버지의 관계, 그의 심리적 갈등에 대해 주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반전 때문에 아마도 다음 2부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사건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시오패스라는 존재가 주로 평범해 보이는 사람 중에 있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사이코패스보다 소시오패스가 훨씬 많다고 한다.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소시오패스가 전 인구의 4프로라고 하니,,, 25명 중에 1명은 소시오패스라는 건데.. 무시무시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누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두 얼굴, 또 다른 본성이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떤 숨겨진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나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