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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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이 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밥하는 노동은 존중을 안 하는 게 모순이죠. 먹는 건 좋아하면서 음식하는 노동은 왜 이렇게 천시하는지 항상 불만이에요. 그래서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저도 그냥 '교육 공무직이에요' 하고 말아요. 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낮춰 보니까요. 우리 자신부터 좀 용감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부터도 밖에 나가서 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못해요. 동료들도 말 안 하는 사람이 더 많고요. 임금이 높아지고 인식이 개선되면 나아지겠지요."               p.33


좋은 인터뷰는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만들어 준다. 은유 작가의 책들을 꽤 많이 읽었는데, '글쓰기'에 관한 책과 '인터뷰'를 묶은 책들이 많은 편이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날카로운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인터뷰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우리 곁 노동자 열일곱 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올해 63년 만에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명칭이 복원되고, 5월 1일이 법정 공휴일로 되었기에 이 책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일하는 사람이 덜 죽고 덜 다치는 세상을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사인>에 2024년부터 1년 6개월간 연재한 은유의 ‘먹고사는 일’을 바탕으로 지면 관계 상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담았다. 


총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은 평소에는 잘 안 보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이다. 급식 노동자, 청년 농두, 배달 노동자, 요양 보호사, 청소 노동자, 노동 변호사, 국어 교사, 배우, 가수, 유튜버 등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일 1700인분의 밥을 지으며 밥은 타인에 대한 사랑의 실행이라는 걸 보여주고, 자본의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고 삶의 시간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로 음식을 실어 나른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립을 공생으로 바꾸는 이야기를 꿈꾸고, 터부시하는 편견의 벽을 넘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살아간다. 시간의 모든 조각을 주워 담아 낭비 없이 일을 하고, 모르는 이들을 향한 이타심과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과격해서가 아니라 절실하기 때문에 세상과 싸운다.  




열다섯 살에는 가장을 잃은 가족의 눈빛을, 서른 즈음 신참 버스 기사일 때는 모욕으로 파랗게 질린 나이 든 동료의 얼굴을, 쉰넷 셔틀을 몰 때는 작은 승객의 재잘거림을, 예순여섯 만년의 노동 운동가는 남은 동지들이 붙잡는 손길을 외면하지 못했다. 타인의 삶에 뛰어들었고 뭐라도 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합쳐져 박사훈만의 66년을 이루었다. 자신의 존재 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외롭지 않은 생이었다. 명절때 조카들이 큰 아버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오면 그는 되묻는다. 살면서 돈이 중요할 거 같으냐, 사람이 중요할 거 같으냐?                 p.246


현대인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의 일에 끼어들면 평온한 일상이 깨지며 먹고살기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내면에 자리해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은유 작가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대사인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라는 말을 인용하며, 과연 그게 사실일까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눈앞의 불의와 타인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버스 기사로 일하던 박사훈 씨의 삶이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 준다.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매순간 타인의 삶에 뛰어들고 뭐라도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변 사람을 진심 어리게 대하며, 절대 욕심내지 않고 살아왔다. 그의 인터뷰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뭉클해지는 지점이 온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삶이 떠안기는 온갖 고통을 흡수하고 견뎌내고 얻은 한 줌의 말로, 늙음의 자리에 도달해야 보여주는 삶의 통찰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작가는 '어떤 삶을 가치 있게 볼 것인가가 공동체의 중요한 질문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밥의 가치가 퇴색하는 현실에서 이 책 속 주인공들은 꿋꿋하게 밥을 짓고 밥심을 믿고 밥정을 살며 밥의 혁명을 수행한다. 음식이 있고 동료가 있고 노조가 있는 삶이 어떻게 일상을 바꿔놓는지, 일이 나를 지켜주지 않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들은 자기 삶으로 증명한다. 고단하고도 위대한 타인의 생을 잠시나마 엿보면서 저평가된 노동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 세상이 바라보는 척도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 노동자의 권리, 이타심과 돌봄 측면에서 보면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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