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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의 단두대 ㅣ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상이니 진실이니 하는 건 공짜가 아닐세. 대개 뭔가 희생을 치러야 손에 들어오는 법이지.
따라서 탐정 활동은 남에게 민폐를 끼쳐.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면 그게 제일이야."
하스노가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 p.268
네덜란드의 부호 림스테이크는 오래 전 일본인 골동품상에게 팔았던 괘종시계를 되사러 일본을 방문한다. 아버지와 거래했던 일본인 골동품상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손자가 시계를 다시 거래할 수 있도록 답장을 보냈다. 손자인 이구치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청년 화가였고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했던 림스테이크는 그에게 작품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담백한 화풍으로 그린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이었는데 림스테이크는 유독 한 작품에 사로잡힌다. 우아한 새가 눈앞에서 갑자기 날개를 펼친 듯한 인상을 받은 그림이었다. 이구치는 그 그림을 2년 전에 그렸고, 발상의 원천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똑 닮은 그림을 멀지 않은 과거에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미공개작이 어떻게 캘리포니아주의 유품 정리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과 같을 수 있을까. 이구치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림스테이크에게 그림을 팔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인 하스노와 함께 도작범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해 나간다. 자신이 속한 예술가 모임인 흰갈매기회 회원들이 집에 온 적이 있었기에, 그들이 아틀리에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조사를 해나가는데... 그렇게 도작과 위작을 밝혀내기 위한 추리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그대로 모방한 듯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왜 범인은 시체를 극중 인물 같은 차림새로 꾸미는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걸까. 도작은 이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런 모임을 열지 말았어야 했어. 나한테 탐정 같은 흉내는 무리야."
"정말 그래. 보통은 탐정이 용의자를 모으면 '자, 이 중에서 범인을 지목하겠습니다'라고 하잖아? 그런데 넌 '드디어 용의자가 모두 모였군요. 이 가운데 무시무시한 사건의 범인이 있습니다. 대체 누구입니까? 자,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한 셈이지. 역사상 유례없는 대담한 탐정이야. 미수에 그쳤지만. 그전에 엔도가 시체가 돼서 난입했으니까." p.487
화가 이구치와 전직 도둑 하스노는 탐정 역할을 하며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이 작품의 페이지가 600페이지가 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서사의 중심에 있는 도작 사건과 위작 사건을 비롯해서 천재 예술가의 죽음과 비밀을 품은 무대 여배우의 이야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나의 그림을 둘러싼 기만이 출발점이 되어 벌어지는 연쇄 살인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꽤나 복잡한데, 색다른 상상과 신선한 발상으로 지루할 틈없이 읽을 수 있었다. 탐정의 '동기'와 범인의 '동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밀도 높은 이야기 끝에 만나게 되는 결말 또한 굉장한 여운을 남겨 준다.
<방주>라는 놀라운 작품으로 만났던 유키 하루오의 신작이다. <교수상회>, <시계 도둑과 악인들>에 이은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세번째 작품이다. <시계 도둑과 악인들>은 <교수상회>의 프리퀄이고, <살로메의 단두대>는 <교수상회>보다 몇 달 후의 일을 다루고 있어 출간 순서, 또는 내용 순서대로 읽어도 무방하고, 단독으로 읽어도 내용 이해에는 무리가 없다. 백 년 전 다이쇼 시대의 정서와 풍경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색다른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진상과 진실은 그냥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냈을 때, 마지막 살로메의 단두대에 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어떤 희생을 치를 것인가.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