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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없는 육체
김곡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 세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단단한 육체는 빛을 반사하므로 겉은 드러내고 속은 감춘다. 반면 이번 세기, 보이는 게 전부다. 꿀의 매끄러움이 빛마저 매끄럽게 투과시켜 감출 내부를 없앤다. 이 모든 것을 특정 상품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는 기술들이 도처에 널렸다. 특히 인터넷은 모든 사적인 내밀함을 파괴한다. 거기선 먹고 자고 노는 것까지 모두 노출의 대상이 된다. 육체에 대해선 더하다. p.52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거라고, 외모 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삶의 중요한 덕목이자 재능이기도 하다는 걸 말이다. 예쁜 사람이 더 많은 애정과 배려를 받고, 예쁜 외모가 면접이나 승진에서도 유리하며, 같은 상황이라도 양보를 받는 건 대체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덕분에 우리는 정상체중의 사람도 체중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외모강박시대, 외모불안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에서 육체란 무엇이며, 몸이라는 영역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관종의 시대>, <과잉존재>에서 현대사회의 나르시시즘을 해부했고, <가족계획>, <보이스> 등의 작품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한 저자는 몸의 변천과 사회 변화는 결코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다이어트 중독, 건강 염려증, 딥페이크 범죄,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가스라이팅 등 이 시대를 지배하는 사회현상들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의 동근원적인 현상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육체를 살고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가 성행할수록 스토킹이 유행하고, 딥페이크가 흥행할수록 가스라이팅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어조가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과거와는 다른 육체를 살고 있다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밖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몸을 사랑하자고 외치지만, 정작 진정한 몸이란 누구인지를 망각해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 뷰티는 대중예술이다. 단, 그것은 나르시시즘의 예술이다. 이제 몸을 가진 누구나가 근육과 지방을 깎아내는 예술가가 되고, 몸 각자는 걸어다니는 예술작품이 되어 가지만 거기엔 온통 나, 나, 나뿐이다. 심지어 몸이 나다. 나르시시즘의 미학이 불러온 결과는 끔찍하다. 그것은 몸으로부터 저항성을 없앤다. 몸은 저항 없는 재료가 되어 개인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사유물이 되어간다. p.158
성형과 바디프로필이 요행하는 시대에는 더 많이, 더 빨리 변형되는 육체만이 살아남는다. 저자는 감옥과 고문기구 대신 러닝머신과 수술대에 스스로 올라가 지난 세기 몸밖에서 치르던 전쟁을 이제는 몸속에서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건강의 개념이 바뀌었다. 현대 미용의학과 다이어트법, 의상과 화장품 등의 목적은 몸을 조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헬스장과 수술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범죄의 양상도 달라졌다. 지난 세기의 범죄가 조직폭력과 무장강도 등 견고한 조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세기를 지배하는 스토킹, 가스라이팅, 묻지마 테러, SNS 성착취 같은 범죄들은 편집증적, 점착적, 자기애적이다.
지난 세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단단한 육체는 빛을 반사하므로 겉은 드러내고 속은 감춘다. 반면 이번 세기, 보이는 게 전부다. 꿀의 매끄러움이 빛마저 매끄럽게 투과시켜 감출 내부를 없앤다. 인터넷은 모든 사적인 내밀함을 파괴하고, 좋아요의 경쟁이 일어나며, 신체 다양성은 멸종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편에선 다이어트와 포토샵이 유행하며 모두가 아름다운 몸의 소유자가 되지만, 다른 한편에선 각종 중독증과 함께 데이트 폭력, 리모컨 놀이, 딥페이크 범죄와 같은 병리현상들이 발현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몸에 대한 감각이 변하면 사회에 대한 감각도 변한다고. 몸이 퇴행하면 그만큼 사회도 퇴행한다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이야기는 헬스중독, 스토킹, 가스라이팅, 딥페이크, 뇌과학 등을 과거와 현재를 비교·분석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육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분량이 많지 않아 단숨에 읽히지만, 굉장히 강렬한 사유를 들려줘 잔상이 길게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