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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모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릴 수 있는 부모 역시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아이가 떼를 쓰고 우는 이유는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라고 한다.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상대방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익히지 못한 아이에게 차분함과 기다림을 보여주는 건 얼마나 좋은 예시가 될 것인가. p.61
온갖 매체에서, 각종 책에서 육아에 관련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이기에 각자가 원하는 육아 방식도 그만큼 다르다.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부터 가족들까지 참견하기 제일 좋은 것 또한 육아의 세계이다. 하물며 나라가 다르다면 그 간극의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한국에서 자란 여자와 영국에서 자란 남자가 만나 가족이 되었고, 아이가 생기면서 서로의 차이는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치관도,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내온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서로 다른 삶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영국에는 노키즈존이라는 개념이 매우 생소하다고 한다. 영국은 펍에도 유아차를 옆에 두고 맥주를 마시는 엄마 아빠들이 있고, 부모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된 화장실과 아기 의자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한국에서는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유아차는 밖에 두고 입장해야 하거나, 아예 입장부터 제한되는 곳도 많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노키즈존을 한두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부터 이렇게 다른 한국과 영국의 육아는 사고방식도 매우 다르다. 한국식 육아는 섬세한 보살핌에, 영국식 육아는 유연한 돌봄에 가까우니 말이다. 저자와 남편의 성격 또한 정반대에 가까운데, 감정이 화르륵 잘 불붙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쉽게 화내거나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 차분하게 생각을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한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집에서,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펼쳐진다.

어떡하나, 우리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과거의 그때처럼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유 앞에서 잠시 숨통이 트이다가도 이내 의문이 따라온다. '혼자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한때는 어른으로서 해볼 수 있는 경험들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의미이고 재미이고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경험을 나눌 상대가 없으면 오히려 공허해질 뿐이다. p.162
이 책은 생후 5개월 된 딸을 안고 생방송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MBC 아나운서 임현주가 육아 고민과 결혼 생활을 담은 것이다. 저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와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서로를 ‘번역하며’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겪어 내고 있다. 한 가정에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는 뜻과도 같다. 그만큼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기쁘고 행복하고, 그러다가 또 불안해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게 되는 것이 육아의 세계이니 말이다. 저자는 육아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헤쳐나가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누구나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제의 아이는 오늘의 아이와 다르고, 육아에 정해진 정답도 없다. 한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현실 육아기는 그런 점에서 누구나 겪어 봤을 만한 공감과 두 나라의 무수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드라마로 인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부모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각자의 세계를 잘 지켜가며 조화롭게 관계를 만들어나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서로의 언어를 정성껏 번역하며,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함께 자라고 있는 이 예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