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
김경연 외 지음 / 오월의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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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되돌아가고 싶지도 해명하고 싶지도 않은 그 들뜬 감각이야말로 마침내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형식을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히고야 말 광기가 아닐지. 광기는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기울어진 존재가 뿜어내는 빛. 그 빛을 따라 흔들리고 싶은 그림자에게로 마침내 당도하는 사랑.                 - 백지은, '광기의 기울기' 중에서, p.57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위키드>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 작품은 착한 마녀인 줄 알았던 글린다는 철없는 공주병 환자였고, 사악한 마녀로 알려진 서쪽 마녀는 오즈의 마법사에 맞서 싸우다 억울하게 악인으로 몰랐다는 서사로 선악의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그레고리 머가이어의 소설이 원작인데, <위키드>는 '못되고 사악한 존재'의 주체를 마녀 개인이 아니라 세상의 음모로 교체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마녀'라고 하면 <위키드>부터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에서 <위키드>를 다루고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는 2016년 강남역 사건, 미투운동의 연속선상에서 발굴해낸 여성의 목소리들이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는 겨우 이만큼의 자리조차도 허락받지 못했던 여성들에 대한 커다란 부채감에서 기획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20편의 글 중 일부는 '근대 합리성의 젠더성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렸던 학술포럼에서 발표된 글이다. 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축약한 네 편 외에 해당 주제와 관련해 여성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시, 소설, 드라마, 여성 현실에 대한 비평가들의 실존적 목소리를 한꺼번에 만날 수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완벽한 슬픔을 겪은 여자들은 모두 죽었다. 어느 때에는 화형을, 어느 때에는 총살을, 어느 때에는 폭행을 당해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지 않을 정도의 슬픔뿐이다. 토로하는 슬픔조차 미완의 슬픔이라는 데 또다시 슬픔이 있다.           - 성현아, '피 흘리며 자매가 된 마녀들' 중에서, p.252


'마녀' 라고 하면 대체로 어둡고 사악한 무언가,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상징한다. 마녀는 여성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며 감당할 수 없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마녀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신화, 종교, 탄압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현대에서도 빈번히 쓰인다는 점이다. 중세 시대에는 평범한 여성들이 마녀라고 누명이 씌여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마녀사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인터넷, 언론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혹은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지닌 인물에 대해 기득권이 행하는 위협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시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등 각종 텍스트를 가져와 마녀와 광녀로 불리는 여성들의 탄생 과정을 살펴본다. 마녀는 어떻게 마녀가 되었으며, 미친년은 왜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읽어내는 광기와 비정상성에 대한 서사는 드라마틱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위키드>부터 시작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브 앤 아나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오정희와 박완서 소설의 여성들, 한강의 <채식주의자>,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문화 텍스트들 속에 그려진 마녀와 광기에 관해 살펴본다. 


초능력을 지닌 문란하고 파괴적인 마녀와 광기의 여성들, 딸, 엄마, 며느리 등의 자리에서 발생하는 초과와 잉여의 자리, 그리고 남성의 언어를 배반하며 혐오를 전복하는 여성 서사들까지 짚어보며 '마녀와 광녀'라는 불길한 자리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빈번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끈질기게 경험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문학평론가들의 글을 모은 것이기에 쉽게 술술 읽히는 글들은 아니었지만, 밑줄 그으며 꼼꼼하게 읽고 사유하기에 매우 의미있는 책이었다. 자, 펄펄 끓는 내장 없이는 말할 수 없는 마녀와 광녀들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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