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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얼마나 그리울지 예측하고 미리 애도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회피하고자, 삶을 이루는 요소들이 지닌 가치를 잘 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 한다. 우리가 하는 선택과 우선순위 결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얄팍하다. p.38
가까운 사람의 예기치 못한 죽음, 그리고 그것이 촉발시킨 부채감과 죄책감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남겨진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그러니 애초에 마음의 준비 같은 건 불가능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날들에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그 사건은 늘 불시에 일어나곤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출판사 빈티지북스에서 홍보 일을 하던 시절, 직장 상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러셀의 죽음을 겪고 쓴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모습 둘 다를 봐주는 사람이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가장 너그러운 믿음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벌어졌다. 게다가 러셀은 가장 폭력적이고도 잔혹한 방식의 죽음, 자살로 곁을 떠나갔다. 사람들은 벌어진 일을 남겨진 이들이 눈치챘을 거라고 추측하고는 한다. 중요한 징조를 무시했느냐고, 타인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한 건 아니냐고. 하지만 삶은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친구가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 했지만, 내가 듣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죄책감은 가장 잘못된 형태의 애도가 아닐까.
"전 살면서 행복한 사람들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어요.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데요?" 나는 러셀을 생각할 때 그 질문을 떠올린다... 삶이 기적인 건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매일 잠에서 깨어나 삶을 지키고자 싸우기로 한다는 사실,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려는 삶을 품에 꼭 끌어안는다는 사실이다. 그 정반대의 일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기적, 순전한 기적이다. p.77
이 책은 도난 사건으로 시작된다. 단 한 시간 아파트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보석들이 전부 없어진 것이다. 도둑은 침실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더러운 부츠로 침대 위 새하얀 이불을 밟으며 물건을 가져가 버렸다. 모두 꽤 값나가는 물건임에도 보험을 들기 위한 보석 감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값어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은 자신이 공간이 안전하다는 감각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불안이라는 감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난 사건으로부터 한 달 뒤, 가장 친한 친구가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일 역시 갑작스럽게 벌어졌고, 먼저 일어난 사건의 불안에 깃든 상실감이 친구의 죽음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상실을 경험하게 만든 이 두 사건은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슬픔과 애도를 다룬 글들을 꽤 읽어 왔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을 비껴가며 상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문장이 너무도 수려해서 온통 밑줄과 포스트잇 플래그로 가득 차버렸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얼마나 그리울지 예측하고 미리 애도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고, 괜찮아지는 법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이해해보려는 애틋한 시도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상실은 살다 보면 누구라도,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과정이기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슬론 크로슬리는 동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를 예리하게 관찰해온 작가다. 이 책은 사라진 이를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슬픔과 애도, 우정과 사랑의 본질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깊이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