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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텔레패스
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령이 보이세요?"
"안 보이는데."
"유령을 믿으시는 건가요?"
"몰라. 그러니까 조사하는 거지."
내 질문에 하루코 씨는 그늘 한 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p.58
금요일 밤, 퇴근 준비를 하던 카렌에게 직장 동료가 말을 건다. “이상한 괴담 들으러 가실래요?” 남동생이 대학교 오컬트 연구회 소속인데, 동아리에서 괴담을 들려주는 이벤트를 일요일에 한다는 거였다. 무서운 걸 보러 혼자 가기 싫다는 말에 함께 가기로 하고, 괴담 발표회에 참석하게 된다. 다른 괴담들은 평범했지만, 한 여학생이 홀로 등장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괴담은 오싹했다. 오직 카렌에게 들려주는 괴담인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로, 그녀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 후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 거실에 있는데 침실 쪽에서 '철퍽'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비릿한 개골창 냄새가 난 것이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는 동안 매일 밤 이상한 소리와 냄새가 시작된다.
그렇게 시달리다 해결할 방법이 없자, 초자연현상으로 고민하는 분들의 제보를 받는다는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라는 곳은 대학교 초심리학 연구실과 제휴해 초자연현상의 실태를 조상한다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한편 의뢰를 받은 고시노와 하루코는 조그만 영화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취미라고 하기엔 꽤나 전문적이었는데, 전직 형사인 탐정과 한때 초능력 소년으로 유명했던 초능력자와 친분이 있었고, 대학교 연구실과도 소통하며 초자연현상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카렌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해나가면서, 그 동안 괴담 발표회에서 카렌처럼 지목당해 괴담을 들었던 이들이 모두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실종된 다섯 명은 모두 실종되기 전에 카렌과 똑같은 현상을 체험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상황이었던 거다. 괴담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이 실종되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가운데 나는 뭔가가 마음에 걸려서 속이 탔다.
아까 대화하다가 뭔가 알아차릴 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머릿속을 맴도는 정보의 조각을 잘 짜맞출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발상의 꼬리를 붙잡기 위해 고전적인 방법에 의지하기로 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저기, 죄송한데요, 그, ESP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존재하는 거죠?" p.173
이 작품은 일본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도쿄소겐샤’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21세기 일본에 걸맞은 걸작’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개최한 '소겐 호러 장편상' 수상작이다. 작품을 쓴 가미조 가즈키는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로 호러문학에 빠진 후 호러 기사와 단편소설을 써왔다. 그러다 사와무라 이치가 심사위원이라는 이유로, 난생처음 장편소설을 집필하여 소겐 호러 장편상에 응모해 수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호러로서도 오락소설로서도 아주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심사위원 전원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각종 미스터리 차트를 휩쓸며 최고의 호러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하려는 학문인 초심리학이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다. 괴담과 초자연능력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추리 과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 특히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유령이 정말 존재하는지, 저주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그걸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시각은 크게 달라진다. 유령이나 저주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그것을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초자연현상이 실제로 벌어졌으니,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굉장히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그 과정이 재미도 있거니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오싹함도 갖추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던 작품이었다. 현지에선 후속편 <폴터가이스트의 죄수>가 출간되었고, 작가는 현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국내에서도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