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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울어져 걷지 ㅣ 창비청소년시선 53
김물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상 좀 치우자/책상 구경 좀 하자/참 많은 게 놓여 있구나//
둥둥 떠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뒤적이다가/모서리가 없어 굴러다니던 작은/고민을 떨어뜨렸어요/휘적휘적 아래를 더듬는 내 손길에/물결치는 책상이 부드러운 몸을 휘어요//
빛이 일렁거리며/내 것들이 함께 반짝여요 - '내 책상' 중에서, p.14~15
시는 학창 시절에 자주 썼던 편지에서, 그 시절을 위로해주던 책과 만화로부터, 이곳 저곳에 붙였던 귀여운 스티커와 어느 소풍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놀이터의 빈 그네에 앉아서, 어지러운 책상을 치우다가, 한 발 한 발 언덕을 오르면서, 마트에 수족관을 지켜보다가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시이다. 시인들은 그렇게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모아 시를 빚어낸다.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도 동시대의 좋은 시를 읽고 즐겨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새 쉰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김물 시인은 청소년이라는 과도기적 존재를 헤아리는 따듯한 시선으로 그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친구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내 사진을 보며, 코인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책을 읽으며 마음의 부피가 늘어나는 상상을 한다. 친구와의 관계와 어른이 되어 가면서 겪는 혼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섬세하게 담겨 있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울어져 걷'는다는 제목부터 청소년들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이미 세상에 대해 알만한 건 다 아는 상태, 몸은 성인처럼 자랐지만 아직 정신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태가 바로 청소년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가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당연한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천천히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주변의 어른들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거미줄이 거기 있는 줄도 몰랐다/바람 끝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고 있는/어떤 것의 날개 조각//
바람 때문에 보이는 것이 있다/게양대에 온몸이 휘감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는/태극기와 골목 안 바람 빠진 풍선의/소리 없는 걸음걸음//
바람 때문에 알게 되는 것이 있다/앞머리에 덮여 있던 그 애의 이마가/희고 반듯하다는 것을 - '바람은 가려지지 않는다' 중에서, p.105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도 동시대의 좋은 시를 읽고 즐겨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어린이는 ‘동시’로 시를 향유한 것에 반해, 청소년은 교과서에 실린 정전, 그것도 그들의 삶과 감각에 맞지 않은 어른의 시를 읽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창비청소년시선’은 대부분의 시집이 올해의 청소년 도서, 문학나눔 등에 선정되었으며, 2025년부터는 중1 새 교과서에만 7편의 작품이 실리기도 했으니 엄청난 성과다. 다시 또 10년, 20년 이어지며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창비청소년시선은 지난 40번째 기념 특별 시집인 <도넛을 나누는 기분>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황인찬, 박소란, 양안다, 박준, 유희경 등 자신만의 고유하고 개성 넘치는 시 세계를 구축한 20명의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의 10대 시절을 추억하며 쓴 창작 시 60편을 모은 시집이었는데, 시집을 읽으면서 꼭 청소년뿐만 아니라 초심자들이 읽기에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다. 누구나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시집 시리즈는 표지도 아주 예쁜 편인데, 이번에 만난 <나는 기울어져 걷지>는 빛의 방향에 따라 컬러가 변하는 홀로그램 느낌이라 더욱 예쁘다. 청소년들이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선물로 주기에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시가 뭔지 잘 모르겠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어렵게만 느껴졌었다면 청소년 시집부터 만나보면 어떨까. 아직은 시가 낯선 청소년들에게도, 여전히 시가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