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 언제나 꺼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영화 한 그릇
오토나쿨.박지완 지음 / 유선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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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낫토의 촉감이 떠오른다. 발효된 콩에서 나온 미끈한 실에 가득한 차가움은 사실 일반적인 좋은 맛에는 포함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맛이냐고 물어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냥 한번 먹어보라고 할 뿐. 마찬가지로 <녹차의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줄거리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직접 보고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일본 어디엔가 살아가고 있을 그 가족의 안녕을 바라게 되는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61~62


<리틀 포레스트>, <줄리&줄리아>, <바베트의 만찬>, <카모메 식당> 등 영화를 보고 나서 유독 음식이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영화 속 음식에는 인물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며, 혹은 그 음식을 먹으며 용기를 받고, 위로를 받고, 하루를 견뎌낼 힘을 얻는다. 이 책은 그렇게 영화와 요리를 사랑하는 두 여자가 한 편의 영화에서 출발해 한 그릇의 요리로 완성한 기록이다. <재생의 부엌>과 <도쿄 일인 생활>을 쓴 작가 오토나쿨과 영화 <내가 죽던 날>의 감독 박지완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직접 요리도 하며 일기처럼 글을 썼다. 


<걸어도 걸어도>의 일본식 냉소면, <호텔 슈발리에>의 피넛버터 쿠키, <녹차의 맛>의 연두부 낫토, <리플리>의 프리타타,  <해피 투게더>의 광동식 닭고기 덮밥 등 요리를 통해 영화를 추억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선우가 자신이 일하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영업을 마치며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 먹는 장면에서 시작해, 김지운 감독님께 들었던 시나리오 강좌 수업이 끝나고 처음 마셔보았던 에스프레소의 추억도 흥미로웠고 <호텔 슈발리에>를 스무번은 봤다는 공통점으로 만난  그녀에게 만들어줬던 피넛버터 쿠키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어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고독이 두려운 사람들을 위한 고독한 멘치카츠,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삼계탕, 어느 여름날의 잊히지 않는 콩나물 냉국 등 어렵거나 복잡한 레시피가 없어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냉장고에서 맥주와 잔을 꺼내 화려한 포테토 사라다 옆에 둔다. 이걸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부스팅 된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젓가락으로 먼저 토핑을 올리지 않은 포테토 사라다를 입에 넣는다. 재료들이 조화롭게 존재감을 뽐내며 부드럽고 상큼하고 아삭하고 고소하고, 혼자 다 한다. 여기에 다시 맥주 한 모금으로 입안을 비우고 다시 토핑을 곁들여 한 입. 베이컨 크럼블과 양파 플레이크의 부서지는 소리와 그 풍미가 먼저 느껴지면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p.212~213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순간들을 맞이할 때, 바닥까지 추락한 듯한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 너무 피곤해서 몸도 마음도 내 것 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럴 때 가장 즉각적인 처방전으로 맛있는 음식만한 게 없다. 다시 힘을 내볼수 있도록 속을 달래주고, 마음을 토닥여주니 말이다. 추운 겨울날 먹는 따끈한 어묵탕, 뭐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하는 달콤한 케이크, 속에 맺힌 화를 다 없애줄 것 같은 매콤한 낙지볶음 등 음식만이 줄 수 있는 힘이다.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음식이 함께 했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장면에서 음식이 등장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 영화 속 한 장면이 남긴 감정을 고스란히 재현해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 음식을 요리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편안하고도, 따스한 기분이 들어 너무 좋았다. 


좋은 영화를 보고 길을 나서면 언제나 그 여운에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가볍게 요리를 해보면 어떨까. '그 영화에 담긴 이야기들이 공기처럼 흘러나와 내 삶에 스며'드는 마법같은 순간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영화와 요리가 그저 하나의 취미를 넘어 우리 삶의 큰 위안과 기분 좋은 의욕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각자 좋아하는 영화 속 음식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달걀말이, <봄날은 간다>의 라면, <줄리&줄리아>에 등장하는 뵈프 부르기뇽 같은 음식들 말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을 떠올려 봐도 좋고, 직접 만든 소박한 음식을 통해 우리의 매일을 지탱하는 순간의 소중함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대충 먹어도 살 수 있고,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좋은 음식과 영화는 삶을 한층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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