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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이는 사람 - 달달북다 앤솔러지
김화진 외 지음 / 북다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반복적인 삶은 괴롭지만, 변화 또한 괴롭다. 그럼에도 그런 괴로움은 한번 겪어볼 만한 것 같다...... 환경을 뒤집을 수 없다면 내면을 뒤집어보면 된다. 사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요즘 사랑 생각을 많이 한다. 티튀루스 때문이겠지. 철없어 보이겠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 지반을 뒤흔드는 듯한 굉장한 변화로서의 사랑은 3개월이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다른 사랑이 온다. 광기가 잦아든 뒤의 사랑, 또다시 일상이 되는 사랑이. - 김화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중에서, p.39
서울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모림은 일에도, 사랑에도 좀처럼 열정을 가질 수가 없다. 회사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다 보면 다들 무언가에 열중해 있고 집중할 일이 있는데, 자신만 그곳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해 여름 모림의 습관은 아침 8시, 출근길에 떡집에 들르는 거였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떡집이었고, 주로 인절미, 무지개떡, 절편을 돌아가며 샀다. 저녁에 공원 걷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역류성 식도염 증상때문이었는데, 그로 인해 생활 습관을 고쳐보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귀여운 혀, 다부진 다리, 그림 같은 꼬리, 너그럽게 접힌 귀까지 개와 함께 산다면 저런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런 개였던 것이다. 개가 너무 귀여워서 남자에게 말을 걸었고, 이름이 약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거의 매일 가던 떡집 사람이었던 거다. 그는 스물여덟이었고, 모림은 서른한 살이었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감이 없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상태로 떡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원에서 만난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는데,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듯 말 듯 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김화진 작가님의 작품은 평소에도 즐겨 읽었던 터라 기대하며 읽었다. '이 시대에 사는 곤란과 알 수 없는 사랑의 막막함에 대해, 그런 걸로 켜켜이 쌓인 현재라는 시간에 단단히 눌려 있는 시루떡 속 팥 같은 나'라는 문장처럼 공감되는 대목들이 많아 이번에도 아주 좋았다.

이 빌어먹을 놈의 연애. 나는 쿠션을 끌어안고 뒤척거리며 곱씹었다. 안 하면 그게 제일 마음 편하련만 또 그건 너무 외로울 것 같으니까. 이다음에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거기엔 어떤 기대도, 설렘도 없었다. 어릴 땐 그런 과정도 재미있고 투닥투닥 지지고 볶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웠던 것 같은데, 이젠 나이가 들어 그런가 마냥 피곤하기만 했다. 그냥 어디 가서 돈 주고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서로 맞춰가는 귀찮은 과정 없이 서로 알 거 다 아는 편안한 연인 같은 걸. - 이유리, '하트 세이버' 중에서, p.362
작은 판형에 컴팩트한 디자인으로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었던 '달달북다' 시리즈는 가격도 착해서 몇 권 구매해서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시리즈는 2024년 여름부터 1년 동안 12편의 로맨스 단편소설이 나왔었다. 이 책은 그렇게 매달 한 편씩 소개되었던 로맨스 단편소설 시리즈를 한데 묶은 소설집이다. 로맨스×칙릿, 로맨스×퀴어, 로맨스×하이틴, 로맨스×비일상이라는 키워드로 각각 세 편씩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 김화진, 한정현, 이희주, 예소연, 백온유,이유리, 이미상 등 지금 가장 핫한 12인의 젊은 작가들이 쓴 작품이라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 나온 <신경 쓰이는 사람>은 그렇게 따로 구매해서 읽어야 했던 책 12권이 함께 수록된 거라 종합선물세트같은 느낌이었다. 달달북다 시리즈를 읽어본 적이 있다면, 꼭 이 책으로 소장하길 권해주고 싶다.
김화진 작가님의 작품을 비롯해서 사내연애 이야기를 다룬 장진영 작가님의 작품도 재미있었고, 유령을 보게 된 소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나는 이야기인 이희주 작가님의 사랑도 흥미로웠다. 열일곱 소년 소녀의 사랑을 그린 백온유 작가님의 작품도 좋았고, 삶 대신 잠을 선택해온 스무 살 '잠보'의 첫사랑을 보여준 이미상 작가님의 캐릭터도 기억에 남는다. 각각의 작품에는 이야기 시작 전에 '사랑'에 대한 제각각의 정의가 쓰여 있다. 김화진 작가님은 '경솔하게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 중 가장 경솔하게 선택(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고, 한정현 작가님은 '자꾸만 멈춰 건너온 곳을 돌아보게 되지만 그 시작점을 잊지도 못하는 이미 지나온 횡단보도'라고 썼다. 이선진 작가님은 '뭉근한 온기로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가 몽글몽글해지는 것'이라 했고, 예소연 작가님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자꾸 하게 만듦'이라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예소연 작가님의 정의에 아주 공감했다. 그러게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애써 자꾸 하게 되는 거냔 말이다. 하핫. 사랑의 모양과 의미는 개인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빛깔이 되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열두 명의 작가들이 풀어내는 사랑 이야기 또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자, 지금 곁에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