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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옷이 마르며 나오는 김이 창문을 뿌옇게 만들었다. 몸이 마르고 따뜻해지는 동안 달아오른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행복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언제나 그랬듯 오두막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제공해 줬다. 때로는 베이스캠프였고, 때로는 피난처가 돼줬다. 힘차게 출발하는 곳이 됐다가 무사히 착륙하는 곳이 되기도 했다.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도 언제든 믿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p.161
지역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저자는 일상에 치여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조금씩 팔아넘기고 있었다. 일거리는 어쩌다 하나씩 들어왔고, 보수는 형편없었으며, 고생이 끊이질 않았고, 나날이 스트레스만 쌓이며 의욕은 꺾여갔다. 완전히 길을 잃은 상황에서 그는 우연히 중고직거래 사이트에서 숲속의 허름한 오두막 한 채를 사게 된다. 어린 시절 자랐던 숲에 대한 향수와 도시로부터 삶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에서 ‘MZ판 월든’으로 화제를 모은 이 책은 낡은 오두막을 직접 수리하고 채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삶도 조금씩 고쳐지는 놀라운 경험을 담고 있다. 물론 전기도 와이파이도 없는 아날로그 공간이 주는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난로를 설치하기 위해 지붕을 뚫고, 헐거워진 천장 구석에서 단열재가 비처럼 쏟아져 사방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기도 한 것이 실제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문과 바닥의 수평도 맞춰야 했고, 데크를 덮고, 화장실을 정하고, 진입로의 늪도 메워야 했다. 전기, 수도, 배관, 전선, 욕실, 조명, 와이파이, 휴대전화 신호 등 설비라고는 무엇 하나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 오두막은 그냥 지붕을 얹고 문을 낸 나무 상자였다. 저자는 그래서 더 완벽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건축과 목공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이 망치와 못으로 오두막을 수리해 가는 과정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점차 그의 삶에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주는 경험이 된다. 도시의 바쁜 삶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감각과 속도를 되찾게 된 것이다.

오두막은 조용히 우리의 감정을 부추기는 응원단 같았다. 내면에 있는 자기 의심의 찌꺼기를 치우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자연스레 오두막을 방문하는 일에 중독됐다. 결심만 하면 규칙적인 운동, 채소 섭취, 충분한 수면에도 중독될 수 있지 않나. 오두막에 들를 때마다 명확해졌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오두막을 찾았다. p.285
저자는 친구들과 함께 주말마다 오두막에 가서 수리를 시작한다. 목재 수백 달러 치와 아무도 사용법을 모르는 공구가 한가득 든 트럭, 그리고 세 대의 차를 나눠 타고 온 여섯 명의 바보 군단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매년 집, 여자 친구, 직장이 달라지던 자신에게 드디어 불변의 장소가 하나 생겼다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됐다고 말이다. 그리고 실제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작업을 해나가는 동안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몰입감을 경험한다. 몇 년째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했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었던 것이 비해, 오두막은 아주 또렷한 현실에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두막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체험하면서 인생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안락한 생활에 감사하게 된 것이다.
숲속 오두막에서의 소소한 노동이 불치병처럼 따라다니던 무기력과 불면증을 단번에 해결해주었다는 점 또한 의미 심장하다. AI와 알고리즘으로 매끄럽게 작동하는 세계의 한편에서, 비합리적이고 불편한 일들로 가득찬 아날로그의 세계만이 줄 수 있는 힘이니 말이다. 누구나 첨단 기술의 홍수 속에 살면서 디지털 디톡스와 단순 노도에 대한 숨겨진 욕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실천할 일이 없기에 도시에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말이다. 비 오는 날 녹슨 지붕을 툭툭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오두막 밖의 싸늘하고 축축한 공기, 난로 앞에서 몸을 데우고 말리는 기쁨,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짙은 삼나무 향과 온기 또한 냉난방 잘 되고 인공적인 향으로 채워진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모험이기도 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 책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날,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을 수 없어진 순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