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사란 무엇인가?
디르크 회르더 외 지음, 이용일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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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들어오는 이주와 나가는 이주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이러한 이주의 복합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것은 "고국"에서 타국의 "새로운 세계" ─ 많은 신화들이 가정하듯,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진다 ─ 로의 일방적인 이주 경로만을 제시한다. 이주는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의 소수민족 집단촌으로의 이동이나 제약이 있는 구세계에서 무한한 새 기회의 땅으로의 이동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주"라는 개념은 다양한 선택들을 함의하고 있다.             p.30~31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를 가로질렀던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부터 시작해 초기 농경시대의 이주들을 비롯한 선사시대 이후로도 도시화 과정 동안, 상호문화적 접촉과 순환 무역, 식민 정복 사회를 거쳐 19세기에는 이주 체계들이 전 지구적으로 작동했고, 20세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난민 발생, 순혈주의, 강제 노동 이주로 계속 되어 왔다. 


언젠가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을 다룬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한다.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30만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꽤 많은 수이다.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어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에 본인 명의의 핸드폰 개통이 어렵고, 보험 가입이 필요한 수학여행을 가거나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도 할 수가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교육받을 권리는 갖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들도 꽤 많이 읽었는데, '이주'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이 정도였다. 




이동하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과 삶들을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써 인종과 젠더의 중요성과 민족국가들의 상당한 권력이 주목을 끌게 되었고, 학계는 지난 20년간 이러한 각각의 쟁점들을 더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스스로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이주민들은 거의 없는 반면, 이주민들 이 맞닥뜨리는 권력을 가진 국가들은 그렇게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 다양한 시점에서 서로 연결된 사회들 또는 국가들을 넘나들며 느슨하게 공유되는 이주 체제들의 일련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p.250~251


문학, 영화, 혹은 뉴스를 통해 난민과 이주노동자, 디아스포라 등 '이주'라는 단어는 위기나 갈등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 정도의 개념으로만 생각해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 책은 인류가 살아온 긴 시간 속에서 인류 역사 전반을 관통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놀라웠다. 이주사 연구의 선구자인 회르더와 하르치의 역작인 이 책은 이주를 특정 시대의 문제나 정책적 대응 대상으로 축소해 온 기존의 시각을 재검토하고, 학제간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실 '이주사'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우리와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주'란 본래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국가간, 민족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모님 집에서 본인의 대학으로 이동했거나, 출신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도 모두 이주에 해당하니 말이다. 그렇게 수 세기와 수천 년에 걸친 이주의 형태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주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주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 삶의 본질적 조건이라면, '이동'을 인류 역사의 상수로 놓고 세계사를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흔히 이주민을 ‘뿌리 뽑힌 자’ 혹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문제적 존재’로 인식해왔다면, 이 책이 그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의 각 단계에서 보이는 이주의 특징과 의미를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구성이라, 역사와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21세기 난민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내는 역사 이야기가 이주사에 대한 입문서로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사회학적이고 인류학적으로 이주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역사 속 이주라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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