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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 상·청춘편 -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한 가부키의 세계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모노의 소매 움직임, 우수 어린 눈빛, 무엇보다 커다란 묶음 머리를 흔들며 춤추는 그 작은 어깨에 객석의 누구도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다미 바닥에 버려진 도자기 술병조차도 마치 몸을 일으켜 무대를 지켜보는 것만 같습니다.
한지로가 무심결에 중얼거렸습니다.
"이거, 정말 훌륭한 스미조메로구나. 나가사키에 이렇게 실력 좋은 게이샤가 있었던 건가." p.25
타치바나 키쿠오는 누가 봐도 한 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났다. 열네 살의 키쿠오는 야쿠자 가문에서 매년 열리는 정월 신년회에서 가부키 무용극을 공연하고, 마침 그곳에 있던 유명 배우 한지로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날 반대파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수장이었던 키쿠오의 아버지가 숨을 거두게 되고, 새해 첫날에 발생한 처참한 사건으로 인해 조직은 거의 와해되고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키쿠오는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세상은 어린 소년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복수에 실패하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간사이 지역 가부키 명문가의 당주인 2대손 하나이 한지로에게 의탁하게 된다. 키쿠오는 한지로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인정받는 슌스케와 함께 본격적인 가부키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춤이 좋아서 배우가 되었지만 키쿠오가 맞이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가부키는 과거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였으나 현재는 영상 매체에 밀려 점차 소외되어 가는 ‘잊혀 가는 전통’일 뿐이 말이다. 이를 반영하듯 가부키 연극을 공연할 극장도 전국에서 손에 꼽을 만큼 현저히 줄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키쿠오는 춤에 대한 열정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리고 자라온 환경도 타고난 재능도 다르지만 둘도 없는 라이벌이자 친형제 같은 사이로 지내는 키쿠오와 슌스케. 한쪽은 야쿠자의 아들이었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은 인기 가부키 배우의 후계자였지만 재능은 그에 조금 못 미쳤다.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키는 대대로 세습되는 것이 문화였는데, 과연 두 사람은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느덧 가문의 후계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고심 끝에 내린 한지로의 결정은 키쿠오와 슌스케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꾸게 되는데, 두 사람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순간마다 가부키 배우라는 존재에는 그 가족도 포함된다는 걸 사치코는 절실히 느낍니다. 무대에 서는 것은 배우 한 명이지만, 예를 들자면 정글에서 살아가는 짐승 가족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총괄자인 미츠토모 같은 공연 기획 회사와 극장, 후원자에 관객과 매스컴 등, 적이 될 수도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상대로부터 온 가족이 서로를 지키고 싸우며 살아남아야만 하니까요. p.256
이 작품은 일본에서 올해 6월에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보>의 원작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또한 100만 부 이상 판매될 만큼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주류에서 한발 밀려난 ‘가부키’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가부키 배우의 삶을 통해 예술의 극치에 다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해준다. 가부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 작품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흔히 가부키라하면 얼굴에 하얀색 분칠을 한 배우들의 모습부터 떠오른다. 가부키 공연의 모든 출연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 역할 또한 남성 배우가 맡아서 한다. 남성 배우가 여성으로 분장을 하고, 여성적 발성을 하는 것이다. 여성으로 가장한 남자 배우를 '온나가타'라고 한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3년간 가부키 분장실을 직접 드나들며 생생한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덕분에 온나가타의 세계를 더 리얼하고 환상적으로 작품 속에 재현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무려 3시간의 긴 분량이라고 하는데, 19일에 개봉할 예정이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매우 기대가 된다. 가부키의 세계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재현시켜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공연 실황처럼 느껴진다고 하니 말이다. 또 가부키 연습을 실제로 수개월간 소화했다고 하는 요시자와 료의 인생 연기도 매우 궁금하다. 소설을 읽으며 완벽한 연기와 춤, 무대를 만들어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두 라이벌의 구도가 마치 '유리가면'의 남자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것 같다. 상 청춘편에 이어 하편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다. 자,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