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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 이길상 교수가 내려주는 커피 이야기
이길상 지음 / 싱긋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첫번째 커피 붐이 일었다. 1820년대에 시작되어 1840년대까지 지속된 제1차 커피 붐을 거치면서 커피는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무역품의 지위에 올랐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급증한 것이다. 먼저 생산 측면에서는 새로 등장한 커피 생산국 브라질이 본격적으로 커피의 대량 생산과 수출을 시작함으로써 커피가격을 떨어뜨렸다. 커피가격이 하락하면서 상류층뿐 아니라 중산층 시민들과 지식인들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도시를 중심으로 커피하우스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p.19
언젠가 커피에 관한 통계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한해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신 커피가 약 250억잔에 달한다는 기록이었다. 1인당 연간 500잔의 커피를 마신 셈이니, 전 국민이 하루에 최소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것이다. 게다가 인구 10만 명당 카페 수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작년 기준 전국의 카페가 10만 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가 서울이라는 점도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국민 1인당 커피전문점에서의 소비액도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하니, 가히 커피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일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커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커피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누구이며, 언제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일까. 이 책은 커피라는 작은 물질 하나로 역사라는 거대 서사를 다루고 있다. 교육학자이면서 커피인문학자인 저자는 개항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커피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문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본다. 커피는 인류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는데, 끽다점에서 시작해 발전한 카페 문화, 세기의 발명품인 커피믹스의 등장,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책, 커피에 관한 논쟁과 유행 등 역사책으로 읽어도 흥미롭고, 커피에 관한 인문학책으로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손님이 오면 손님의 취향과는 관계없이 커피를 끓여 내오는 '새 예절'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3년 기준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받는 일당이 300원이던 때 커피 한 잔은 100원이었고 우리나라의 연간 커피 원두 소비량은 3500톤을 넘어섰다. 그러던 중 그해 10월 갑자기 불어닥친 오일 쇼크는 커피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커피가 다시 희생양으로 등장했다. 신년 초부터 언론에서는 "도심 다방들 커피값 인상" "협정료 위반 다방 집중 단속" "커피값 올리면 조처" 등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p.302
밥은 어쩌다 한 두끼를 안 먹더라도 상관없지만,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히는 사람, 바로 나다. 어릴 적에 커피라는 음료를 마시면 안 되는 그 나이에,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쓴 걸 왜 먹냐고. 엄마가 그때 농담처럼 말했었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인생의 여러 면을 겪어본 다음에 어른이 되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거라고. 어릴 때는 하면 안 된다.는 금기에 대해 다소의 반항심같은 것도 있었으므로, 그냥 둘러대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커피가 점점 더 맛있게 느껴지면 질수록, 어쩐지 어린 시절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 내가 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는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쓴 커피가 달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생각 말이다. 게다가 커피에는 쓴 맛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 속에는 깊은 풍미와 향과 그윽한 맛이 숨어져 있다.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나이기에, 이 책은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커피를 둘러싼 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아직 한참 멀었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긴 인생에서 하루의 시작이 괴로운 날도 많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의 향기에 휩싸여 있는 동안, 어느새 그 감정에서 구원받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그 한 모금의 위로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말이다. 갓 로스팅 된 원두로 내린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향기가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페이지 곳곳에서 그 향기가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하면 오버일까. 착각일지라도 그만큼 커피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