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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나 여기, 작은 마법이 존재한다. 우리가 받은 저주가 곧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위험과 종말을 예측하고자 사용하는 모델은 놀라움, 아름다움, 기쁨 역시 보여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를 보는 것, 세계를 우아한 방정식으로 걸러내 예언과 꼭 닮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지구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구의 현재를 이해해야 한다. 뜨거운 열대와 차가운 극지대를, 축축한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습한 공기를, 더운 날 부드럽게 불어오는 서늘한 바닷바람을. 잠시 가만히 앉아 세계가 그 아름답고도 끔찍한 비밀들을 보여주길 기다려야 한다. p.26~27
최근의 기후 변화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이 정도로 올라가는 것도, 이렇게 급작스레 변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적어도 인간이 존재해온 이래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상실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대로 가면 온난화는 계속될 것이고, 해수면 상승은 이어질 것이며 극단적인 기상 현상들을 피할 길이 없어질 것이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 이러한 현상들을 예측해 왔고, 그렇게 상상한 최악의 공포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위기감으로 미래를 예측해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NASA 출신 기후과학자인 저자는 기후 예측 모델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지구의 재앙적 미래를 시뮬레이션해본다. 매일 세상의 끝을 마주하는 기분으로 기후 변화가 일으킨 복잡한 감정들을 겪어 낸다. 분노와 죄책감, 슬픔과 두려움, 놀라움, 그리고 희망과 사랑의 감정이다. 물론 이런 감정들은 과학자가 느끼기에 적절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노에서 사랑까지, 아홉 가지 감정의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려주는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공감을 통해 우리 모두와 지구를 다시 강하게 연결시킨다. 아홉 가지 감정은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으로 이 감정들이 각각 하나의 목차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비밀로서의 경이, 기후 변화의 진짜 원인은 우리라는 죄책감, 때 이르게 잃어가는 세계에 대한 애도,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자부심, 지금껏 아무도 한 적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희망, 그리고 기후 모델이 말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느끼는 무한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절절한 감정과 과학적 통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더 나은 결말은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러 올 사람은 없다. 만약 결말에서 우리가 구원받는다면, 그건 결점 많고 한계도 있지만 각자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해낸 공동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과거에 환경을 성공적으로 지켜낸 사례 중 지금 우리의 상황과 완벽히 들어맞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p.313
'기후'는 장기간에 걸친 날씨의 평균치이자, 날씨가 일어나는 배경 조건이다. 기후의 변화는 지각 판이 움직이고, 지구가 궤도 속에서 흔들리고, 심해의 해류가 바뀌는 수백만 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날씨가 인간이 짧은 생애 동안 경험하는 것이라면, 기후는 신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기후를 이해하려면 세계를 형성하는 모든 힘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대기뿐 아니라 해양도 포함된다. '기후과학자'들은 수많은 방정식을 바탕으로 작은 세계를 만들고, 견고한 기반 위에 복잡한 구조를 층층이 쌓아간다. 기후과학자들이 미래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물리학'이 있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한 이유로, 우주는 얼음 덩어리로 뒤덮인 산꼭대기에서도, 우주의 허공에서도, 대양의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에서도, 그 어떤 맥락에서도 참인 방정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방정식을 풀면 비가 왜 내리는지, 바람은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어째서 지구에 기온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기온은 왜 상승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기후 모델은 바로 이러한 마법으로 만들어 진다.
2003년 8월, 프랑스의 여름에 기후 변화로 발생한 최초의 대량 사망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43도가 넘는 전례 없는 폭염이 예상된다는 우려스러운 보도 자료를 발표했지만, 여름은 원래 더운 거라고 다들 코웃음을 치며 매년 여름과 마찬가지로 긴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런데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건 끔찍한 사태였다. 푹푹 찌는 아파트에 갇혀 떠날 수도, 휴가를 보내는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던 독거노인들이 해가 진 뒤까지도 이어지는 유례 없는 폭염을 마주한 것이다. 무려 1만 5,000명의 노인들이 고독사했고, 이들의 시신은 누군가 찾아가기를 기다리며 냉장 트럭 속에 쌓여 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2003년의 끔찍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두 배 더 높아졌다. 북극의 기온은 지구상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50년 만에 찾아오던 폭염이 이제는 10년에 한번 꼴로 찾아온다. 게다가 더 길고, 더 뜨겁다. 우리는 사랑하는 세계를 때 이르게 빼앗기는 중이다.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래는 여전히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이야기를 토대로 우리의 미래를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책들을 꽤 읽어 왔지만, 분노와 죄책감과 같은 인간 보편의 감정을 통해 지구온난화 문제를 들여다보는 책은 처음이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과학자의 문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해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느라 바빴던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