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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 따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슬이 은실로 짠 이불처럼 잔디를 뒤덮고 있었다. 태양이 막 솟아오르고 있었다. 문득 엄마가 생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거든.
내가 하려는 일들이 크리스틴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크리스틴이 시작한 일을 내가 마무리 짓고 싶었다. 크리스틴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하니까. p.117
메그는 아이들 사이에서 '쇼핑백 소녀'로 통했다. 가방을 구입할 돈이 없어 교과서를 쇼핑백에 넣어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는 늘 아이들의 눈길을 피해 구석자리를 찾아 앉을 만큼 숫기 없는 아이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가 사기를 당해 집을 빼앗기고,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죽은 이후 메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집이 없어 노숙자처럼 미니밴에서 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남자들과 데이트를 해야 했고,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봉투에 담아 오거나, 원 나이트를 한 남자의 집에서 생필품을 슬쩍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더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거짓을 꾸며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사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한 남자에 대한 복수. 10년 동안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필요에 따라 연기를 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을 마스터해온 현재의 메그는 과거의 그녀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학창시절부터 제자들을 유혹해 성폭행을 일삼던 교사, 부인을 괴롭히는 식품회사 오너 등을 시작으로 메그는 사기극을 펼친다. 그들이 갈취해 얻은 부와 명예를 모조리 빼앗기 위해, 남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메그가 변신을 거듭해 온 동안 엄마에게 접근해 사기를 쳤던 론은 사업을 성장시키고, 시의회 의원이 되고, 곧 주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있었다. 과연 메그는 오랜 시간 계획해온 복수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한편 지난 십 년 간 메그에 관련된 정보들을 모으며 은밀하게 그녀의 뒤를 밟아온 이가 있다. 그녀가 자신에게서 젊은 시절의 꿈과 열정을 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전직 기자 캣이다. 캣은 수습기자 시절 메그와 딱 한 번 전화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 짧은 통화는 인생의 궤도를 완전히 틀어놓았다. 캣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대가를 메그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 잠시 메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힘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무얼 하고 싶어요?"
"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죠." p.189
이 작품은 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사기꾼이 된 메그와 그녀를 파멸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추적해 온 캣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생존을 위해 거짓의 삶을 선택한 여자와 그 거짓을 폭로하려는 여자의 두뇌 싸움이 각자의 시선으로 교차 진행되면서 서사는 긴장감 넘치게 흘러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삶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이 많은 공감을 불러오는 작품이었다.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여성 서사로서도 훌륭한 작품이고, 매력만점의 캐릭터로 군더더기 없는 전개를 보여주는 스릴러로서도 매우 잘 쓰인 작품이었다. 과연 완전히 다른 이유로 각자의 대상을 향해 십 년 동안 준비한 마지막 승부는 어떨게 될까.
"남자에게 기대서 얻는 안락은 필요 없어. 너와 내가 힘을 모아 바라는 걸 쟁취하면 돼.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무서울 게 없지."
이 작품은 <라스트 플라이트>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줄리 클라크의 신작이다.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각종 폐해와 범죄에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불합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등에 업고 힘없는 여성을 농락하고 집을 빼앗는 만행을 저지르는 론이나 자신의 외모와 지위를 이용해 순진한 여학생들에게 접근하는 코리의 파렴치한 행동은 사실 현실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고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극중 크리스틴의 걸 코드가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너와 내가 함께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우리가 힘을 합하면 무서울 게 없다는 뜻의 걸 코드는 메그의 삶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작가는 강자들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이 암울한 현실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이라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절망도 힘을 합하면 극복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짐작하더라도, 그 과정이 너무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 궁금하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