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정한 날들이 단단한 인생을 만들지
                    임희재 지음 / 달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단칼에 거절하거나 모른 척한 프랑스 이웃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나같이 자기 일처럼, 친구 일처럼 발 벗고 나서주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마주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이웃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니까.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니 이웃들에게 미리 호감 포인트를 적립해놓으면 어떨까? 갑자기 옆집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p.19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사는게 바빠서 팍팍해진 요즘,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온기가 하루를 기분좋게 만들고, 내일을 좀더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곳이고, 아무리 개인주의에 익숙해진 우리지만, 타인의 작은 친절과 소소한 다정함이 결국 우리를 구원해주는 힘인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14년 동안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절한 이웃들과 다정한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였지만, 미소지으며 인사하던 사람들과 마음을 다해 도와주던 이웃들 덕분에 혼자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는 다정한 말 한마디, 손을 내밀면 언제든 잡아주던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혼자서도 단단히 설 수 있는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프랑스에는 그만큼 다양한 정이 있었고, 독일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독일인은 다 무뚝뚝하다는 편견이 깨질 만큼 한결같이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다정함이 남았다.'는 문장이 너무 좋았다. 친절은 또다른 친절을 만들고, 다정함은 또다른 마음을 다정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사실 요즘은 한 집에 오래 살아도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할 수는 있어도, 예전처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일 나눠 먹거나,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린 시절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옆집 아래집 할 것 없이 전부 교류하며 살았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나니 이제는 낯선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래서 더욱 저자가 외국에서 혼자 오랜 기간 살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선뜻 도와주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부러워졌다. 우리나라도 예전엔 그랬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프랑스 여성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특히 파리 지하철역 계단에서 누군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낑낑대고 있으면, 누군가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여자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언제 어디서나 시민의 위험을 감지하고 그들을 돕는 영화 속 히어로처럼. 조금이라도 난처해 보이는 사람에게 여자들은 성큼 다가갔다. 젊은 프랑스 여성부터 흑인 이민자 아주머니까지, 나이와 인종에 상관없이 여자들이 여자를 도왔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나면 쿨하게 갈 길을 갔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다정함이 남았다.                p.209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어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책이 사랑받으면서 근래에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많이 나왔었다. 나 역시 관련 책들을 꽤 많이 일었었는데, 진화 인류학의 시점으로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있었고, 뇌과학의 시점으로 인간의 협력과 이타주의에 대해 말하는 책도 있었다.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청년을 구하려고 뛰어든 행인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이웃도 있다. 한쪽에선 임신부인 아내가 상어의 공격으로부터 남편을 구해내는데, 다른 한쪽에선 길에서 누군가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더라도 방관하거나 모른척 한다. 인간이 아주 무모할 정도로 타인을 구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면, 어째서 세상 곳곳에 타인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반대로 왜 누군가는 자기 일도 아닌데 나서서 함께 나루려고 하는 것일까.
혐오와 폭력을 비롯해서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정함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을 만나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일상 속의 작은 온기를 통해 별것 아닌 말이 하루를 기분좋게 만들어 준다는 것, 사소한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당연한 세상,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세상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