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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 제3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텍스트T 16
유진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도 된다고. 그 세계로.'
고유한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적의에 가득 차 그 애를 노려보았다. 나는 내 삶을 지켜야 했다. 고유한은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검은색이던 눈동자가 햇빛에 희석되어 갈색으로 변하자 조금은 다정하게 보였다. 고유한이 말했다.
"그렇지만 네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어. 그걸 모르고는 그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p.123
중학생 유주는 걱정많고, 숫기없는 성격에 자신감도 없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당연히 일 년 중 가장 싫어하는 기간은 새 학기. 이미 무리가 형성된 아이들 틈에서 겉돌며 눈치만 보느라 매일이 힘겹다. 이 년 전 대입에 실패한 뒤로 스스로 방에 갇힌 언니를 살피느라 집에 가도 부모들은 유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유주는 매일 밤 생각한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딴 인생은 싫다고, 새로운 인생을 갖고 싶다고. 잠들면 내일이 올 거라는 생각으로, 소리 없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삶이라니 얼마나 지옥같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밤마다 텅 빈 방에 혼자 앉아서 '내일 또 학교에 가야 돼'를 고민하던 유주에게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라고 생각하고 초록색 캡슐형 알약을 먹게 되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유주는 약을 먹은 뒤 현실과 비슷하지만,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 완벽한 세계에서 깨어난다. 집에는 다정한 부모님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학교에서는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꿈인 걸 알지만 절대 깨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그렇게 유주는 트윈이라는 초록색 알약을 통해 꿈과 현실을 오가기 시작하는데, 꿈속이 풍요로워질수록 현실은 점점 더 암담해졌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알약을 먹고 잠들면 그곳에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꿈 속 세계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과연 완벽한 행복일까?

"너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잖아."
"알아.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거잖아."
나는 기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언니가 말했다.
"그게 잘못됐어?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한 게 잘못됐냐고."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
"현실인지 꿈인지가 뭐가 중요해? 네가 말하는 현실이 뭔데?" p.206
아이돌 연습생처럼 잘생긴 전학생이 짝꿍이 되어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반장이 되어 교실의 중심이 되고, 시험을 치면 전과목 올백에 미술 실력도 뛰어난, 그야말로 완벽한 자신의 모습에 유주는 점점 익숙해져 간다.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이 지옥이었기에, 자정이 되기 전 알약을 하나씩 먹고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잠을 자고 나면 현실로 돌아왔는데, 잠을 잤는데도 다른 세계에서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된다. 약을 먹지 않고도 이 삶을 지속할 수 있다니,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니 유주는 들뜬 마음이다. 하지만 꿈속은 현실과 거울같이 닮았다. 십 대가 며칠씩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었고, 현실의 유주 역시 병원 침대에 누워서 깨지 않고 있을 터였다. 아이들은 암거래 사이트를 통해 약을 거래하고 있었고, 그렇게 현실과 꿈의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었다. 점점 더 약에 의존하게 된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 작품은 청소년 심사위원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제3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너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뜻하지 않게 외톨이가 되거나 고립된 생활을 견뎌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극중 유주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정말 현실적으로 담아 내면서 놀라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청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마음 아프지만 훅 빠져들어 읽게 되고, 마치 내 이야기 같아 공감되고, 너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청소년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