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숨 - 흙과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만들어왔는가
유경수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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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후변화, 악화하는 지구 생태계, 변화하는 식량 수요에 맞서, 이 집이 무너질 조짐은 없는지 물어볼 때가 되었다. 사 층짜리 집이 덩치에 걸맞게 좋은 이웃인지, 즉 모든 이에게 고르게 양질의 영양을 제공하며, 작은 규모에선 주변의 생태와 환경에 도움이 되고, 지구 규모에선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지 물어볼 때가 되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래층에는 마법과도 같은 오래된 기술이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169


식물을 많이 키우다 보니 흙 냄새를 맡을 일이 자주 있다. 흙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서도,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찾아 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흙을 만드는 데 식물과 동물 및 미생물이 맡은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흙에 대한 공부는 생태학으로 이어지고, 또 그것은 지질학으로 연결된다. 이 책은 미네소타대학의 토양학자 유경수 교수가 쓴 흙에 관한 탐구를 담고 있다. 토양생태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그만큼 낯선 세계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수만 년 전 죽은 동식물에서 유래한 오래된 유기물부터 조금 전 뿌리에서 분비된 최신 유기물까지 서로 다른 시간이 뒤죽박죽 공존하는 곳이 흙'이라는 점이 가장 신비로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흙은 수십만 년 혹은 수백 만년에 흐르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겪고 그만큼의 이야기들을 축적시켜왔다. 그러한 흙이 숨을 쉬고 있다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20여 년 전 흙 공부를 시작할 무렵, 자신을 사로잡은 주제가 '토양 호흡'이었다고 말한다. 시작은 물리학이었는데, 점차 생태학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계기도 '토양 호흡'이라는 단어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토양학, 생태학, 지구과학에서는 토양 호흡 측정이 매우 흔한 작업이라고 한다. 그 방법은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는 것인데, 직경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체임버를 통해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을 해 토양의 날숨을 알아보는 것이다. 토양 호흡을 대지의 숨결로 이해한 저자는 그 말이 가리키는 어떤 광대함과 아름다움에 홀려 숨이 막혔다고 하니, 과학자의 낭만인가 싶어 흐뭇해졌다. 




토양 호흡은 커다란 숨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태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2023년을 기준으로 368억 톤이다. 흙이 해마다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는 그것의 대충 열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할 때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80만 년 동안 300피피엠을 넘지 않았다. 지구 규모에서 흙이 탄소중립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균형은 거대한 숨의 한 부분인 인간의 숨에서도 유효하다. 당신이 해마다 꼬박꼬박 배출하는 250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 또한 광합성을 통해 당신의 식량이 된 250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와 해마다 '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긴 역사를 통해 꾸준히 반복된 이 균형은 알면 알수록 위태롭다.                 p.339~340


이 책은 흙 속의 산 것과 죽은 것들의 순환, 농사와 지구 사이의 관계, 기후 변화, 지속가능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부지런히 발로 뛰며 채집한 지구 곳곳의 흙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 년에 수차례씩 답사와 탐사 여행을 떠난다고 하는데, 전라남도 진도부터 하와이의 화산섬, 인도 히말라야 기슭, 그리고 북극권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방대한 스케일만큼이나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농경 방식 중 하나인 '화전'으로 경작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히말라야의 해발 1000~3000미터 사이에 자리 잡은 나갈랜드에 가고, 캘리포니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땅 구덩이를 파고 드러난 토양층을 관찰 기술하기도 한다. 스웨덴의 라플란드에서 100년 넘게 버려진 사미족의 순록 캠프를 방문해 대형 초식동물이 누비던 빙하기 시대의 북구를 상상해보고, 태평양의 화산섬 하와이와 사모아에서 수백만 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흙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이 책은 공간적으로는 동서양을, 시간적으로는 1만 년 전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 시점인 2100년까지를 아우른다. 그 장대한 여정에서 흙에 기반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이야기하고 지속가능성을 같이 고민해본다. 기독교에선 '재의 수요일'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경구와 함께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새긴다고 한다. 흙은 인간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흙을 파괴하는 것은 본향을 죽이는 일이자 돌아갈 곳을 없애는 일임에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흙을 갈아 엎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흙은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깊이 경험한 자연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부분인 '흙'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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