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석산의 서양 철학사 - 더 크고 온전한 지혜를 향한 철학의 모든 길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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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우리는 원래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세계에 대해 질문하게 되지 않을까요. 왜, 세계는 이런 모습이고,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며,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등을 묻게 될 겁니다. 즉 우리는 설명을 요구합니다. 우연이나 뜻하지 않게 생긴 지식이 아니라 이성을 이용한 객관적인 설명을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알고 싶어 하고, 세계에 대해 호기심과 놀라움을 지닌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가지 원인을 들어 설명합니다.               p.73


철학은 어렵다. 쉬운 철학, 누구나 할 수 있는 철학이란 없다. 체계가 있어야 하고, 주장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책은 끊임없이 나온다. 왜 그럴까. 철학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철학을 시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 보아야 할 것은 2500년이 넘는 철학의 역사이다. 철학사 없이, 철학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히 철학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지 않고 저자의 개성과 주관으로 풀어낸 <러셀 서양철학사>와 조금 더 공정하고 균형 잡힌 철학사를 위해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있는 그대로 풀어낸 <틸리 서양철학사>에 비해 이번에 만난 <탁석산의 서양철학사>는 어려운 주제별 분석이 아니라 철학자 위주로 소개하는 방식이라 보다 초보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버전이었다. 물론 하드커버 양장에 656페이지라는 분량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굉장히 가독성이 좋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누구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철학사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은' '추상적이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철학이 생각보다 쉽고,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요청대로 일단 소설 읽듯이 한 번 편하게 읽고, 그 다음에 정독하는 것을 추천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형식이 필요합니다. 이야기는 연역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우연으로 우리를 애태우게 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없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결론을 예측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어떤 이야기든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이해의 특성입니다. 키르케고르 말대로, 이해는 언제나 사건 뒤에만 옵니다. 리쾨르도 이에 동의합니다. 그는 좋은 이야기는 좋은 허구와 같다고 하면서, 근대주의의 실제와 상상의 구분을 허뭅니다.               p.536~537


이 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부터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를 거쳐 중세, 르네상스에서 근대, 계몽주의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역사를 온전히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철학사란 단순히 철학 이론의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 철학 이론간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된 시대, 그리고 그 이론을 제공한 사상가들과 관련된 연구로 오랜 기간 숙고된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지 않고, 답을 본다면, 그 문제를 알고 풀었다고 할 수 없는 바와 같이, 철학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으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철학 지식이란 사유의 결과인데, 그 결과는 이미 책에 나와 있다. 그 지식을 외운다고, 철학 사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철학사를 읽으면서, 자신의 사유로 철학자들의 작업을 좇아가면,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서양에서 철학은 신비주의, 연금술, 마술 등과 오랜 세월 함께해 왔다. 그러므로 서양 철학의 역사를 온전히 살피려면, 그 모든 영역을 두루 다루어야 한다. 어쩌면 그래서 철학사를 다루는 책이 다양한 판본으로 계속 쓰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철학 교수는, “철학사는 특색과 장점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종류도 또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내에도 여러 철학사 책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테니 다양하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양철학사는 그 내용도 방대하거니와 분량도 엄청나서 한번에 요약할 수도, 읽고도 제대로 다 소화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말 교과서처럼 자주 들여다보고, 여러 번 재독해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책은 〈철학 입문서〉이자 〈철학사 맥락 읽기〉 안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근차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어 더 좋았다. 저자의 해석을 자제하고 철학자들의 주장과 비판을 맞세움으로써, 독자 스스로 사유의 여정에 나서게 한다는 점도 더욱 적극적인 독서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절대 만만하지 않은 분량이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철학사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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