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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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뉴턴은 총 세 권으로 구성된 『프린키피아』의 마지막 권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려고 했으나, 영국 왕립학회 회원들의 반대로 결국 제3권도 앞선 두 권처럼 비과학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책이 되었다. 질량의 개념부터 그가 수립한 중력의 법칙(지금 쓰이는 것처럼 방정식 형식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까지 『프린키피아』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내용은 우리가 지표면에서 경험하는 중력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힘, 그리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힘과 하나로 연결해 설명한 것이다.                p.160


책장에 꽂힌 책을 한 권 꺼내서 거기에 적힌 글자들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쓰인 글과 만난다. 글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이것이 과학을 존재하게 하는 글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과학은 다른 사람의 발견과 이론을 토대로 삼아 그 위에 다른 발견과 이론을 쌓는 방식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주변에서 관찰한 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2천5백여 년 전부터, 책은 과학을 전파하는 데 중심이 되었다. 40권이 넘는 대중 과학책을 쓴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500년에 걸쳐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책들과 그 책을 쓴 과학자들을 조명한다. 


이 책은 고대 학자들이 남긴 최초의 과학적인 기록들부터 시작해 인쇄 기술의 발명으로 시작된 과학책의 르네상스기를 거쳐 다양한 분야가 발전했던 19세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 유전학이 등장한 20세기를 지나 대중과 호흡하기 시작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책의 역사를 살펴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글자를 거울에 비친 형태로 쓰거나 자신만 알아볼 수 있도록 메모를 남기는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과 발명을 감추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을 남겼었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책으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초고에는 동료 과학자 로버트 훅의 이름이 꽤 여러 번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자 결국 출간 전 훅의 이름을 원고에서 전부 지워버렸다는 등 위대한 과학책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도 너무 흥미진진했다. 곤충이 주제인 파브르의 책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그림이 아닌 독자를 사로잡은 그의 문체였다는 사실과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지금까지 출판된 현대의 모든 과학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도 놀라웠다. 




『상대성 이론』은 전체적으로 친근한 어투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대중 과학책 기준에서는 교과서 느낌이 물씬 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상대성 이론을 설명한다. 이론을 수립한 당사자가 직접 저술한 책인데 상대성 이론의 역사적, 개인적 배경은 나오지 않고 26쪽에 이르러서야 이 이론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철로를 달리는 기차와 번개 칠 때 나타나는 섬광이 예시로 나온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저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런 측면에서 『상대성 이론』은 책을 사는 사람은 많아도 완독하는 사람은 드물기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의 예고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p.250


출판사가 그림이나 사진이 포함된 표지를 디자인해서 과학책에 입히기 시작한 건 현대에 들어서부터다. 그리 멀지 않은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대중 과학책은 표지가 영 칙칙했다. 과학을 진지하게 다루는 책이라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려고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도 있었고, 과학자가 대중을 주 독자로 삼아 책을 저술하는 일조차 과학자의 본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동료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중 과학책의 표지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내용과 어울리고 독자들의 기대에도 부합하도록 디자인되기 시작했다. 1988년에 출간된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는 과학책이 한 권도 없었던 수많은 책장에 한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블랙홀과 우주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를 일약 스타로 만들고 대중 과학책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호킹의 성격과 그를 쇠약하게 만든 병을 대하는 방식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은 많아도 사 놓고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이 태반인 책으로도 유명한 이 책의 인기로 말미암아 출판계가 대중 과학도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올해 초에 나왔을 때부터 궁금했던 책인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선정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으로 선정된 기념으로 모집한 서평단으로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워낙 과학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라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고화질 도판이 가득해 시대별 과학서들의 초판 표지와 삽화, 저자 이미지와 내지 속 내용 등 소장용 자료로서도 훌륭한 책이다. 수록된 도판이 무려 280여 점이나 된다고 하니, 도판만 훑어봐도 과학책의 유구한 역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과학 저술이 전문 자료에서 대중의 소통 수단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책으로 일구어 온 2500년 지성의 연대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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