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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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전히 이 나라에서는 밀실살인이 범람하고 있다.

“참 기묘한 시대가 와 버렸지 뭐야.”

포키를 먹으며 요즈키가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단 한 번의 살인 사건을 계기로 세상은 크게 달라지고 말았다. 삼 년 전 일어난 일본 최초의 밀실살인 사건. 그 이후, 이 나라의 범죄는 밀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p.19~20


삼 년 전 겨울, 일본에서 최초로 밀실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금방 잡혔고 유죄 선고를 내릴 증거도 충분했다. 문제는 현장의 불가능 상황을 어떻게 다루느냐였다. 당시 현장은 완벽한 밀실이었고, 경찰과 검찰에서도 누구 하나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예를 들어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을 경우, 범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무죄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현장이 완벽한 밀실이라는 말은 피고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렇게 해서 전대미문의 밀실 재판은 '밀실의 불해증명은 현장의 부재증명과 동급의 가치가 있다'고 무죄판결이 내려진다. 그리고 판결이 내려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밀실살인이 연이어 벌어진다.


최근 삼 년 사이 밀실살인은 삼백두 건이 발생했다. 경찰에는 밀실사건을 담당하는 ‘밀실과’가 신설되었으며, 법무성은 밀실을 분류해 정의하고 밀실 트릭을 세분화해 그 기준을 공표했다. 그리고 밀실탐정이라는 직업도 새롭게 만들어진다. 현재 일어나는 밀실사건의 3할은 지극히 단순한 트릭을 사용하지만, 나머지 7할은 상당히 복잡하거나 급진적인 트릭을 쓰는 터라 평범한 경찰관은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 수수께끼 풀이를 외부의 탐정에게 의뢰하고, 밀실탐정은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고 국가에서 보수를 받는다. 반대편에선 밀실 트릭을 제공하거나 살인을 대신해 주는 밀실 대행업자도 횡행하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밀실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무도 풀 수 없는 밀실을 만들면 살인도 무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파격적인 설정이었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온통 밀실살인으로 가득한, 밀실 트릭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덕분에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걸 증명하는 게 추리 작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미쓰무라는 턱을 괸 채 말했다. 

 “그러니까 추리 작가는 입이 찢어져도 ‘새로운 밀실 트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면 안 돼. 왜냐하면 그건 자기 자신의 직업을 부정하는 일이니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허세를 부려야 해. 그러면 언젠가 그 거짓말에서 진실이 흘러나오는 날이 올지도 몰라.”               p.385


본격적인 이야기는 저명한 추리 작가 유키시로 뱌쿠야가 완벽한 밀실을 남겨 놓은 '설백관'에서 벌어진다. 유키시로 바쿠야는 칠 년 전 타계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작품이 서점에 꽂혀 있는 인기 작가다. 그는 십여 년 전 자신의 저택에 작가들과 편집자들을 초대해 홈 파티를 열었는데, 그 한복판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누군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지만, 주최자인 바쿠야가 낸 일종의 추리 게임이었다.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 그 방에 가슴에 나이프가 꽂힌 프랑스 인형이 발견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그 밀실 수수께끼는 아무도 풀지 못했고, 십 년 동안 깨지지 않은 밀실로 남아 있다. 그렇게 미스터리 팬들과 밀실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 그곳에서 십 년 동안 깨지지 않던 밀실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방은 밀실이었고, 뚜껑이 꽉 잠긴, 필름통 크기의 플라스틱 병 안에는 방의 열쇠가 들어 있었다. 트릭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미해결 사건을 흉내낸, '설백관 밀실사건'의 재현이 벌어진 것이다. 설백관은 외부 세계와 격리된 육지의 외딴섬이었고, 유일한 통로인 다리는 불타버렸고, 전화선이 끊겨 경찰은 부를 수 없었다. 자, 남겨진 인물들은 밀실의 수수께끼를 밝혀내 사건을 해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과연 누가 밀실 트릭을 풀어낼 것인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가모사키 단로는 이 작품으로 제20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문고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밀실과 트릭을 간단한 그림으로 도표처럼 보여주는데, 덕분에 독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밀실 수수께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다. 밀실 트릭을 다룬 작품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런 식의 설정과 세계관을 가진 작품을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했다. 사실 밀실 트릭은 미스터리 장르에서도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데, 그 어려운 밀실 트릭을 한 가지가 아니라 여섯 가지나 등장시켜 보여주는 작품이라 작가가 얼마나 이 장르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연구해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밀실 마니아의 애정과 노력이 쌓여 이렇게 멋진 데뷔작이 탄생한 것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평단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작이 연달아 나오면서 시리즈 누적 판매 16만 부를 돌파했다.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에 이어 같은 세계관을 가진 <밀실 광란시대의 살인 - 절해고도와 일곱 개의 트릭>과 <밀실 편애시대의 살인 - 폐쇄된 마을과 여덟 개의 트릭>이 나왔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모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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