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모노 에디션)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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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다시 웅크리고 앉은 하얀 석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순간 나는 내 여행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 우박 장막이 완전히 걷히면 무엇이 나타날까?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잔인성이 평범한 감정이 되었다면 어떡하지? 그사이에 인류가 인간다움을 잃고 냉혹하고 몰인정하고 엄청나게 힘센 동물로 진화했다면 어떡하지? 그들에게는 내가 구세계의 야수처럼 보일지도 몰라.                  - '타임머신' 중에서, p.44


<시간 여행자>는 심리학자, 의사, 저널리스트 등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사차원 기하학을 연구한 결과 시간도 일종의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정말로 공간의 네 번째 차원이라면, 왜 시간 속에서는 돌아다닐 수 없는 걸까 의문을 품었고 결국 공간과 시간 속을 어떤 방향으로든 이동하는 기계를 만들기에 이른다. 르네상스 시대였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시간 속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고, 절대로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 여행자는 만드는 데 수년이 걸린 기계장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직접 미래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들려준다. 그가 도착한 세계는 무려 802701년의 미래였다. 


시간 여행자가 미래에서 만난 생명체들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난쟁이들이었다. 엘로이라는 종족은 부드러운 친절함과 어린애 같은 태평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우 연약해 보이기도 했다. 도자기 인형처럼 예쁘장한 그들은 시간 여행자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낯선 생명체와 의사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를 둘러싸고 낮고 부드러운 소리로 자기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미래라고 하면 발전된 과학 기술과 지식으로 인해 모든 면에서 현재의 인류보다 진보해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수준 높은 윤리나 놀라운 진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류는 현대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모습은 이들 인류가 전부가 아니었고, 시간 여행자는 곧 다른 종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과연 그는 이 아득한 미래에서 어던 경험을 하게 될까. 




저게 뭐지? 그는 넋을 잃을 만큼 놀라서 그 유령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의심하고, 눈을 깜박거리고,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고, 믿었다. 그것은 고체의 실물이었고, 그림자가 딸려 있었고, 두 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그 안에는 대낮의 햇빛 속에서 백열광을 내는 마그네슘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금속과 햇빛을 빨아들이는 흑단 막대기, 문질러 닦은 상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부속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무질서한 꿈의 기계처럼 확정적이 아니라 암시적이었다.                 - '<크로닉 아르고> 호' 중에서, p.181~182


사실상 웰스가 그린 이 미래는 이 작품이 쓰일 당시의 19세기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고 있는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운 아득하게 먼 세상이다. 그래서 그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만날 수 있는데, 웰스의 독창적인 상상력은 과학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189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최초로 과학적인 수단으로 가능한 시간 여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웰스는 문학사상 최초로 과학적 가설을 원용한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옛날부터 있어 왔던 미래 여행의 성격을 꿈과 마법에서 '있을 법한' 현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책에는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그 원류격인 작품 「<크로닉 아르고>호」를 비롯하여, 웰스의 기막힌 상상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수정 알」과 「맹인들의 나라」 등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웰스는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거 생물학자 헉슬리로부터 과학을 배웠고, 이후 과학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학과 과학,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을 정도로 다양한 일들을 해온 다재다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타임머신>은 발표와 동시에 평판을 얻었고, 옛날부터 있었던 미래 여행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인류 사회를 미래나 과거의 시점에 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그야말로 SF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웰스 이전에도 시간 여행을 다룬 소설은 있었지만, 꿈 속에서 경험하는 방식으로 시간 여행을 하거나, 긴 수면 후 다른 시대에서 깨어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과학적인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시간 여행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웰스가 처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웰스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는 굉장히 먼 미래이기 때문에, 우리 인류에 대한 전망과 우주적 차원의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도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극중 시간 여행자가 미래 사회에 도착해서 그들에 대해 알아내고자 나름의 논리와 사고를 펼치는 과정 조차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웰스 이후로 시간 여행을 다루는 SF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고, 나 역시 다수의 작품들을 읽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오래 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고전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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