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모노 에디션) 열린책들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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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무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더라면. 저 고기를 낚지 않고 차라리 신문지를 깐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었더라면.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 '노인과 바다' 중에서, p.96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낚시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벌써 84일째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희망과 자신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침내 낚싯줄이 팽팽해지면서 신호가 온다. 아주 단단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중량이었다. 노인은 애를 썼지만 그놈을 단 1인치도 끌어올리지 못했고, 결국 거대한 물고기를 뱃전에 매달고 그 상태로 돌아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고기는 자꾸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낚싯줄이 빠르게 풀릴 때마다 배도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고, '누가 이기나 한판 붙어 보자'는 마음이다. 그렇게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노인은 상어로부터 물고기를 지키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책에는 표제작인 <노인과 바다> 외에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단편 일곱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떠난 헤밍웨이의 자전적 작품이기도 한 <킬리만자로의 눈>과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를 비롯해서 생전 마지막 단편집에 수록되었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하루키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 단편집에 수록되었던 <하얀 코끼리 같은 산>, <살인자들>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헤밍웨이 문학의 본령은 단편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다 좋았다. 특히나 모노 에디션은 그동안 있던 판본에서 많이 눈에 띈 오역도 바로잡았다고 한다. 원작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려 의역을 가능한 한 줄여 번역 작품을 읽는 독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간결하고 정확한 헤밍웨이의 문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 그 외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날마다 그것을 점점 더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었다고요」

「우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아니요. 우린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어.」

「아니요. 우린 갈 수 없어요. 여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 '하얀 코끼리 같은 산' 중에서, p.228


마거릿은 프랜시스 매코머와 결혼한 지 올해 십 년하고도 일 년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로 수렵 여행을 온 참이다. 매코머는 매우 키가 크고 체력이 좋으며, 코트에서 하는 게임을 잘하고, 낚시질에서도 큰 고기를 낚는 남자였다. 하지만 백인 수렵가 윌슨과 함께 하는 사자 사냥에서 그만 겁쟁이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직업 사냥꾼인 윌슨이 손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벌리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매코머는 소문이 퍼져 나갈까봐 전전긍긍한다. 사자 앞에서 토끼처럼 도망쳐 버린 자신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다음 번 일정으로 물소 사냥을 하기로 했는데, 과연 그는 내일 물소를 잡을 때는 자신의 명예를 만회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헤밍웨이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 단편'이라고 평한 작품인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이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남자 매코머의 삶이 왜 가장 행복한 것인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게 된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실제로 청새치 낚시를 하며 구상했다고 한다. 이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는 소년과의 짧은 대화와 노인의 독백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읽히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사실 아주 어릴 때 이 작품을 처음 읽으며 노인이 청새치, 상어와 벌이는 싸움이 조금 무모하고 의미없게 느껴졌었는데,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 읽었을 때는 처절하게 고독한 노인에게 소년 마놀린같은 존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는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싸움에 임하는 노인의 의지와 마음가짐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를 죽이는 일인 동시에 나를 살게 해주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과연 매 순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는지 말이다. 고전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이렇게 다시 읽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간결하고 가벼운 장정으로 만나는 모노 에디션으로 쉽고 부담없이 고전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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