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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퀸은 언제나 자신을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 왔었다. 이제 그는 고독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한 가지는 자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추락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자신을 붙잡는 것까지도 가능했을까? 동시에 꼭대기와 밑바닥에 있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 '유리의 도시' 중에서, p.119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다 읽었는데, 매번 한번도 같은 스타일을 복기 하지 않는,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기억한다. 폴 오스터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 새 한 해가 흘렀다. 최근에 그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을 읽었었는데, 이렇게 초기작을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빵굽는 타자기>, <달의 궁전>, <뉴욕 3부작> 등 그의 초기작들은 국내에서도 꽤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 나 역시 그 작품들로 그를 처음 만났었다.
초기작들 중에서도 <뉴욕 3부작>은 이후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원형이 담겨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실종과 추적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이야기임에도 결말이 모호하기 때문에 명확한 서사를 좋아한다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욕 3부작>이 그래픽 노블 버전으로 나온다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얼마나 짜임새있게 압축해서 각색했을지, 원작의 모호한 서사를 이미지로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는 소설이 지닌 깊이 있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만화가 지닌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있어 굉장히 훌륭한 장치이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며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보통은 매우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고,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로 전개가 빠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촘촘히 글자가 박힌 소설책보다는 눈의 피로도 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은 반면에, 조금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원작 소설이 이미 존재하고, 그 뒤에 그래픽 노블이 나온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픽 노블이 가진 장점과 소설의 단점이 적절하게 손을 잡은 느낌이랄까. 그래픽 노블의 장르적 특성이 빡빡한 지면 구성, 때론 실험적인 내용들인데,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의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하나 발견한다. <책은 쓸 때 고심해서 묵묵히 쓰는 만큼 읽을 때도 그렇게 읽어야 한다.> 문득 그는 천천히 읽는 것, 과거 그 어느 때의 독서보다 천천히 읽는 것이 비결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책이 요구하는 마음가짐으로 독서할 인내심을 찾을 수 있다면, 점차 점차 완전한 이해에 다다를 수 있겠지. 자신에 관해. 그리고 블랙, 화이트, 이 사건, 모든 것에 관해. 그러나 붙잡은 기회만큼 놓친 기회도 인생의 일부이고,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 '유령들' 중에서, p.180
첫 번째 작품 <유리의 도시>는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다. 필명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 퀸은 한밤중에 엉뚱한 사람을 찾는 전화를 여러 번 받는다. 탐정 회사를 하는 폴 오스터 씨를 찾는 전화였다. 그런 사람은 없다고, 여기는 탐정 회사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전화는 여러 날로 이어졌고, 결국 퀸은 자신이 폴 오스터라고 말하며 의뢰인을 만나 보기로 한다. 그리고 남편의 아버지가 접근하는 걸 막아 달라는, 감시 업무를 의뢰 받게 된다. 그렇게 퀸은 탐정 업무를 하며 노인을 감시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의 삶을 지켜보면서 점차 자신을 잃어 버리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유령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블루는 화이트로부터 블랙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쫓아다니며 지켜봐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블루는 블랙이 사는 건물 정반대 편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그를 몰래 지켜보기 시작한다. 블루는 길 건너편의 블랙을 엿보면서 단순히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도 바라보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삶의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전에는 주의를 비껴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에 진척은 없고, 아무 일도 없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블루는 블랙에게 접근해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보고서를 작성해나가지만, 끝이 없는 숨바꼭질을 얼마나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세 번째 작품 <잠겨 있는 방>은 어린 시절 친구의 실종에 대한 소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둔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친구가 남긴 원고를 읽고 그의 글을 출간하는 작업을 하며 그가 남긴 흔적들을 뒤쫓는 과정에서 나는 친구의 아내와 점차 가까워진다. 세 편의 연작 소설은 각자 독립된 인물들이 누군가를 추적하고, 쫓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끝없이 감시하고 뒤쫓는 과정이 이어지지만, 그에 대한 결과는 명확하지 않다. 좇으면 좇을수록, 대상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모든 것이 더욱 흐릿해진다고 할까. 그러면서 탐정과 작가 등 추적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조금씩 잃어 간다.
원작 소설이 채워주지 못하던 부분을 시각화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그래픽노블 버전이 가독성은 훨씬 좋았던 것 같다. 특히나 세 작품을 각기 다른 작가가 그림을 맡아 작업했기에, 완전히 다른 작법과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삽화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폴 오스터의 소설 세계를 각기 다른 세 작가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그려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그래픽 노블 버전으로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보여주고 있어 같은 작품을 읽는 듯한 익숙함과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듯한 설레임을 함께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좋아했다면,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완전히 새로운 폴 오스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