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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에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외친다. "어이, 복사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알고 있나? 제레미가 이 책의 서론에서 이미 얘기했다고? 오케이, 좋아. 그런데 나는 복사에너지뿐만 아니라 빛까지도 불연속적인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했어. 이 알갱이를 '광자'라 부르기로 했고 말이야. 분위기 파악했으면 다들 멍하니 서있지만 말고 빨리 가서 물리교과서를 새로 써야지!" p.39
양자물리학은 모든 현대 기술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물리학 덕분에 우리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망원경 너머 저 먼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올해는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자역학은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이론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의식과 평행우주에서 자유의지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적 렌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과학 이론을 불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레미 해리스는 박사과정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졸업 전에 실리콘밸리로 진출해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 때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논문 여러 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었고, 현재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이나 원리 자체를 다루기보다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과 철학적 의미에 관해 탐구한다. 매우 유쾌하고 위트있게 쓰여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양자역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지만, 또 엉뚱하고 황당하고 엄청난 이야기들이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향하게 해주는 것이 양자역학이라면, 저자는 바로 그 방식으로 우리를 양자역학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다중우주 어딘가에 자신이 속해있다고 느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선택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양자적 사건의 결과였다. '그런 결정을 내린 주체는 분명히 나 자신이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그래서 간간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부심이나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실체가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주체의식'을 스스로에게 심어주기 위해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다. p.230
사실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도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양자역학은 쉽지 않다. 그래서 100년 가까이 과학자들의 의연이 엇갈리고 있으며,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싸우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이 분야이다. 실제로 양자역학 초창기에 '주류'를 점유한 물리학자들은 "붕괴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라"거나 "닥치고 계산이나 하라"면서 골치 아픈 문제를 덮어 버렸다. 정작 본인들도 심기가 몹시 불편했지만, 옳은 답만 내놓는 문제투성이 이론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계산된 값이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와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현실적인 해석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어의 붕괴이론이 양자역학의 확고한 해석으로 자리 잡았고 그 밖의 새로운 해석은 모두 배척되었다.
누군가가 의문을 표하면 “닥치고 계산이나 해!(Shut up and calculate!)”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던 바로 그 물리학계에 통쾌하게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매우 유쾌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역자가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웃어보긴 난생처음'이라고 했겠는가.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기업가이기 때문에 저자는 물리학계의 권위에 도전해도 크게 피해 볼 것이 없는 입장이다. 그런만큼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보어를 '양자역학의 발전을 저해한 빌런' 취급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이론에 대해 간단하지만 귀여운 그림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현대 물리학계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은 양대산맥이라고 할만큼 중요하고, 또 그만큼 내용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아주 흥미진진했다. 이제 어디가서 나 양자역학이 뭔지 조금 알아, 라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주 만물의 근원인 양자역학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