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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4 - 구슬의 미래 ㅣ 텍스트T 14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비로움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비롭기 때문에 두렵고, 두렵기 때문에 신비롭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자신과 다른 야호와 호랑을 두려워하며 배척하기 시작했다. 신성시하던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사람들에게 괴물로 인식되면서 야호와 호랑은 세상에서 존재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가을은 야호족이 된 이후의 삶을 떠올려 봤다. 인간과 다른 종족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백 년을 넘게 도망 다니기만 했다. 왜 도망쳐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 들키게 되면 인간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p.63~64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 신화를 살짝 비틀어 여우에서 사람의 모습이 된 야호족과 범에서 사람이 된 호랑족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K 판타지 <오백 년째 열다섯>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네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판타지적인 설정이 배경이지만, 주요 서사는 중학생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가을은 열다섯 살의 나이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시리즈를 거듭해 가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이 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어 매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은 늘 다음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최초 구슬의 주인이자 야호랑의 우두머리 원호인 가을은 오백 년째 열다섯 살로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친구들은 어른이 되겠지만, 가을은 어른이 될 수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열다섯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도, 결혼을 할 수도, 부모가 될 수도 없다. 가을에게 신우라는 인간 남자 친구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에 대한 고민이 더 늘어났다.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질수록 신우와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두려워졌으니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야호와 호랑의 결혼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정체를 숨긴 채 살아 온 야호랑들이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기로 결정하고 커밍아웃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완전체 구슬 덕분에 미래를 보게 된 가을은 이 계획이 불러올 끔찍한 미래와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가을은 프로젝트를 막고 야호랑을 지킬 수 있을까.

완전체 구슬의 능력이 미래를 보는 거라면 가을은 그 능력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할머니와 엄마가 가을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모습과 신우가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된 모습은 가을이 미리 알고 싶은 미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점쟁이나 역술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지나온 과거를 알아맞히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를 알려 주지만 정작 현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어제와 내일에 매달리느라 오늘을 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가을은 오백 년을 넘게 살면서 오늘을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113
전편에서 수백 년 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휴로부터 예상치 못한 고백을 받게 되고, 을과 신우, 그리고 휴의 삼각 관계 로맨스도 이야기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었었다면, 이번에는 유정의 또 다른 삼각 관계가 펼쳐진다. 유정이 오백 년 동안 좋아한 현에게 고백을 하지만, 현은 유정을 친구이자 동생, 누나로서 좋아한다고 거절의 뜻을 전한 것이다. 실망한 유정의 앞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휴가 처음으로 구슬을 나눠 준 율이다. 율은 역사속에서 킹메이커로서 많은 일들을 해왔었는데, 그만큼 유명하고 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야호족 중에서도 잘생긴 걸로 유명한 율이 유정에게 관심을 보이고, 결국 그에게 고백을 받게 되고 유정이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건 2천 년 만에 처음이라는 율의 고백에 흔들리는 유정은 둘 다 좋아하면 안되겠지만, 한 명만 선택하기 너무 어렵다고 고민한다.
한편, 율의 주도로 야호랑의 커밍아웃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동안 인간들 속에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야호랑은 정체가 발각될 때마다 괴물로 몰려 고통을 당해 왔다. 율은 야호랑의 정체를 당당하게 드러내면 더 이상 우리를 함부로 해칠 수 없을 거라며 모두를 설득하고, 세상에 야호랑의 정체를 당당하게 드러내자고 말한다. 가을은 보수적인 본야호와 본호랑이 반대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모두들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해 적극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하지만 야호랑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자는 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모두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치게 되는데... 가을은 야호랑의 미래와 가장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시리즈는 오백 년 동안 열다섯 살로 살아온 여자아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신선하고, ‘단군 신화’를 비롯해 ‘서동요’, ‘의좋은 형제’,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등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결말과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이번 작품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시리즈를 만나온 독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여운처럼 남겨준다. 십 대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사랑을 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신화와 옛이야기에 뿌리를 둔 한국형 판타지’로서 청소년 문학의 독보적인 역사를 쓰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이 매력적인 K 판타지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