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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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룩했던 깊은 연결은 죽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p.77


10년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그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30년 이상 함깨 했던 애나는 그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남겨진 이는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아주 좋은 봄날 아침이었다. 바움가트너는 서재에서 글을 쓰다 필요한 책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가보니 아침으로 먹을 달걀을 삶던 냄비가 타버렸고, 그걸 들어올리려다 손을 데고 만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던 플로레스 부인의 딸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다쳐 어머니가 일을 못가게 되었다고 울먹이고, 바움가트너는 어린 소녀를 달래주느라 10분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전기 회사의 계량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헛딛는 바람에 무릎과 팔꿈치를 다친다.


바움가트너는 이날 아침에만 두 번째로 아파서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는 쓰고 있던 에세이도, 가져갈 계획이던 책도, 누이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 약속도 모두 까맣게 잊어 버린다. 이상한 사건 사고로 얼룩진 그날, 통증과 피로로 인한 안개 속에서 시커메진 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에게 <그때>라는 사라진 세계가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대학원 1학년생이던 때부터,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고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양장점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이르기까지....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아내가 평생 써왔으나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던 글들과 바움가트너가 집필하고 있는 원고들이 그의 내적인 여정과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뒤얽히면서 그는 비로소 과거를 두려움 없이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42년의 실패와 좌절, 그러다 이제 적어도 이 하룻밤, 적어도 이 몇 시간 동안은 행복을 닮은 어떤 상태로 있을 법하지 않은 전환이 이루어졌다.                p.151~152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작품을 가제본으로 먼저 만나보았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때문인지, 본책의 표지가 정말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본책으로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환상을 넘나들며 한 사람의 삶을 그려나간다. 물론 삶 전체가 아니라 주인공이 70년이 넘는 인생 가운데 마지막 2년 정도라는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읽다 보면 생애 전체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삶은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조각들을 그러 모은다. 특히나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써낸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절실하고도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수도, 예상치 못했던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삶이지만, 우리가 그 모든 일에 미리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맞이하게 되는 기쁨과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에 망치로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절망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니 말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상실'과 기억' 또한 갑작스럽게 우리를 찾아온다. 냄비가 그을리고, 그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던 날 견고하게 묻어 두었던 과거에 금이 가고 쪼개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밀도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상실과 기억에 관한 아름다운 사유를 보여준다.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지는데,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걸까. 폴 오스터의 빛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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