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빼앗는 사회 -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한국 사회 실패 탐구 보고서
안혜정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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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엇이 실패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의 기준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는 전제와 맥락이 생략되어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지, 어떤 시간적 프레임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나 경연 등에서는 실패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그 외의 맥락에서 우리가 실패라 여기는 많은 일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때로 상대적이며, 나중에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패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p.67~68


우리는 유독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이는 경쟁적 입시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획일화된 성공 경로를 따르며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패를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결과와 성공만 중시하며 실패를 부정하고 숨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패에서 배울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학교 안팎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것이다.  사실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실패연구소가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한 것은 일상 속 실패를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거였다. 실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포토보이스' 사진들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카이스트 학생은 어떤 실패를 경험할까? 부서진 실험 도구, 밤새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기계, 오류로 기괴한 결과물을 산출하는 프로그램 등 그저 보기만 해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포켓몬 초코빵에서 안 귀여운 스티커가 나왔다는 뽑기 실패 사진, 취업 면접을 망친 후 그날 입은 정장 사진, 밤새 연구하고 새벽녘 중천에 뜬 밝은 해, 오늘도 다이어트 실패라는 새벽에 뜯은 과자 봉지 사진까지 다양했다. 학생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실패라는 것의 개념과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실패에서 배운다'라는 말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닌 '배움'이다. 실패연구소의 경험이 보여주듯, 우리는 실패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슌 왕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듯 같은 횟수의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로부터 실질적인 성장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복된 실패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에서 진정으로 배우려면 먼저 그 일을 하는 목적과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과정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실패는 비로소 의미 있는 교훈이 된다.                 p.267~268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보다가 "그런데,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라는 말에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는 대목이 있다. 아무래도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패를 접하는 것이 일반론이니 말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인 기준, 예를 들어 성적,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가는 저마다의 목표와 가치, 그들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학생이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실패를 겪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는 실패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실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용인함으로써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각자의 실패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성찰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실패의 경험을 개인적 교훈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준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디폴트라면, 실패가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패하지 않기보다 크고 작은 실패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회복 탄력적 마인드셋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는 문제를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실패연구소가 어렵게 찾아낸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는 법'을 만나보자. 언젠가는 한국 사회도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배우는 분위기로 나아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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