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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 ㅣ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둘러싸고 한바탕 배를 잡고 웃었다.
실제로 아주 잘 만든 타임머신이었다. 조작 패널에는 연수와 일수를 설정하는 곳이 있어 다이얼을 돌리면 숫자가 변경됐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스위치가 미래와 과거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십 년 후 미래로 가려면 플러스 10, 십 년 전 과거로 가려면 마이너스 10을 설정하는 것 같다.
"누가 만든 거지?"
"어지간히 한가하고 기술력이 있는 인간이겠지." p.63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초판 출간 이후 16년 만에 탄생한 속편이다. 이 작품은 모리미 도미히코와 극작가 우에다 마코토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사실도 화제가 되었는데, 원안이 된 희곡 <서머타임 블루스>의 유쾌한 설정 위에서 ‘다다미 넉 장 반’ 등장인물 전원이 동분서주 활약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현지에서는 순식간에 10만 부가 판매되고,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했다.
시모가모 유스이 장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8월, 영화 동아리 '계'의 멤버들이 속속 모여들어, 아카시 군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 촬영이 진행된다. 무사히 촬영이 끝난 후 '나'는 오즈, 히구치 씨 등과 함께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하숙으로 돌아왔는데, 오즈가 콜라를 쏟는 바람에 하숙에 하나밖에 없는 에어컨이 못쓰게 되고 만다. 그런데 촬영된 영상 속에서 오즈가 마당과 베란다에 동시에 찍혀 있는 장면이 발견된다. 쌍둥이도 아닌 오즈가 두 명이 된 것이다. 그 와중에 다다미를 뜯어 만든 것 같은 '타임머신'과 스스로 시간 여행자라고 말하는 촌스러운 청년이 등장한다. 그들은 타임머신을 직접 써보기로 하는데, 어제로 가서 고장 나기 전의 리모컨을 가져와보면 어떨까 계획을 세운다. 시작은 이렇게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은하계를 포함한 온 우주적 위기까지 초래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카시 군은 쪽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게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는 건 우리가 그렇게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여기 책 한 권이 있다고 쳐요. 우리는 그 책의 내용을 단번에 알 수는 없어요. 책장을 한 장씩 넘겨가며 읽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이미 한 권의 책으로 거기에 있어요. 먼 과거도, 먼 미래도 모두......"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그제야 이해했다.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말이군." p.202
누구에게나 하루는 이십사시간이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간을 멈추거나, 지나버린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라는 아이디어를 거듭해서 이야기해왔다.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인류의 근본적 조건에 대한 반역이자 신과 맞먹는 힘, 궁극의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굉장한 물건이 어찌하여 이곳에 등장한 것일까.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황당무계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 말이다. 타임머신의 조작 패널은 연수로 최대 '구십구 년'까지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든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로 가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겨우 하루 전으로 돌아가보기로 결정한다. 결말이 보이는 인생은 시시하니 미래는 안 되고, 쥐라기 시대에 가보고 싶지만 일억 오천만 년 전이라 너무 멀고, 그러다 타임머신이 고장날 수도 있으니 먼저 가까운 곳부터 시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해 보이는 일조차 좌충우돌 대소동극의 시작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 이야기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의 원안이 된 희곡 <서머 타임머신 블루스>는 극단 ‘유럽기획’에서 2001년 초연한 이래 수차례 재공연을 거듭해왔으며, 우에노 주리 주연의 실사 영화까지 제작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희곡의 시놉시스를 씨실 삼고 ‘다다미 넉 장 반’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날실 삼아 두 작품의 매력을 기가 막히게 엮어냈다. '다다미 넉 장 반'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아 아쉬웠던 독자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속편이 아닐 수 없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소재를 모리미 도미히코 특유의 입담과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여전히 무모하고 바보 같지만, 순수함으로 빛나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편에서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다다미 넉 장 반' 시리즈가 궁금했다면, 이 작품부터 만나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