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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은 '창문' 같다고 늘 생각합니다. 문이 아닌 창문. 손잡이를 돌리면 곧장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장치는 아니지만, 창문이 존재하면 지금의 방과는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창문은 바깥 세계의 부드러운 바람과 강렬한 햇빛, 비에 젖은 흙냄새, 나무와 꽃이 있는 선명한 풍경을 방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채로운 풍경과 바람, 그리고 빛을 데려와주는 근사한 창문입니다. p.23
일본 나라현에 있는 인구 1700명의 산촌, 숲속의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사설 도서관이 있다. 이 책은 한 달에 열흘만 문을 여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서가 들려주는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도서관 사서로 6년간 근무한 저자는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도시 생활이 주는 위화감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무너진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70년쯤 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의 일부를 개방해 사설 도서관을 열게 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전부 개인 장서라서 '나눔'이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개방한 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장서들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고, 손님들은 그 책들을 대출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독서 모임을 통해 현재의 고민거리를 함께 생각한다. 그렇게 휴일이면 버스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고 숲을 가로질러 찾아와준 그들과 함께 읽고 생각하며 서로를 돌보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나누게 된 것이다. 고양이 가보스 관장님, 강아지 오크라 주임님과 함께 루차 리브로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상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장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슨 창문이 반강제적으로 삐걱삐걱 열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그 충격은 때로 강풍이나 눈을 찌르는 빛이 되어 저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건네받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강풍이 불면 좋겠다, 눈부신 빛에 휩싸이면 좋겠다, 휘청대다가 머리를 부딪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p.204
이 책의 원제는 ‘불완전한 사서’이다. 저자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명한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표현을 왠지 좋아한다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말한 '불완전한 사서'의 불완전함이 뜻하는 바와는 별개로, 자기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으며 사설 도서관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불완전한 사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과제를 껴안은 채로 다른 사람의 과제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약을 먹고 자는 탓에 개관 시간이 임박해서 눈을 뜨거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신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저자를 도와주고, 일이 감당이 되지 않아 폭발할 지경일 때는 '청소 좀 도와주세요'하고 SNS에 호소하는 식으로 운영해왔다. 2022년에만 736명이나 되는 손님이 루차 리브로를 찾아 왔다고 하니, 개관하는 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책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서의 에세이답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같은 어린이 고전부터 역사 문헌까지 여러 도서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어 넓은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며,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지금 우리의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게 하는 깊은 독서로 이끌어준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저자에게 책이란 '여러 가지 풍경을 보여주고 바람을 실어 날아주는 창문'이다. 책을 창문에 비유한 것에 공감한다면, 책을 다른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건네준 책을 통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책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아내기 어려운 상황을 살아내기 위해 책을 읽으며 버텨온 저자의 진심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