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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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년은 잘 무장해야 진입할 수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이다. 노화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각자 자신이 잃고 있는 것과 이미 잃은 것, 즉 여기서 무언가를 빼고 저기서 무언가를 더하는 구체적인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허영심을 동원하고 심지어 산업적 동반자와 함께한다고 해도 노화에서 벗어날 순 없다. 인생 내내 우리에게 닥쳐온 신체적 변화를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p.144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력이 감퇴하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며, 외모도 달라지고, 다양한 생리적 변화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한때 가졌지만 다신 가질 수 없는 능력과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우리의 내면은 지극히 풍요로워진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통찰과 혜안을 누구나 갖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젊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깊이와 성숙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노년은 우리의 삶이 가장 깊어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곧 여든 살을 앞둔 노년 작가 안드레아 칼라일은 100세까지 살다 떠난 어머니를 7년 동안 간병하며, 나이 듦에 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품게 된다. 왜 우리는 나이 드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강가의 하우스보트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는 산책을 하며 삶을 돌아보고, 자연 안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진 리스의 <나의 날들> 등 작가들이 나이 듦에 대해 사유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책을 읽어 오면서 주인공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이 든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문화 속에서 중심인물로서의 노인이 거의 부재한 건 이미 느끼고 있는 존재감 상실에 더해 우리를 더욱 보이지 않게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온라인에서 삶의 이 시기를 다룬 좋은 소설을 검색하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노년을 주제로 다룬 소설들에 대한 리스트도 매우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중장년층인 우리가 나이 듦에 대한 기존의 편견 어린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절실히 필요한 걸 더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되겠지만 사회가 외면하라고 지시하고 결국 많은 사람이 우릴 외면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존재로서 대우받기 위해서 보이고 인식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버려지고 잊힐 집단으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라는 질문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p.186~187


우리가 어릴 때부터 접한 동화 속에서 나이 든 여자, 그러니까 '노파'는 보통 가난했고 외모는 지저분한 수준부터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흉측한 수준까지 다양했다. 과자집에 살면서 헨젤과 그레텔을 오븐에 밀어 넣으려는 노파, 다리 한 쌍을 주는 대가로 인어 공주의 목소리를 받아내는 바다 마녀, 의붓딸에게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사악한 여왕, 공주가 물레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도록 주문을 거는 사악한 요정, 라푼젤을 탑에 가두는 사악한 마법사 등 동화 속 노파들에게서 혐오감 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많은 동화들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 어린이에게 교훈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외롭고, 심술궂으며, 악의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나이든 여자의 이미지는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 노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노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자리 잡은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며, 이를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나이 듦을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나이 드는 일이 편안하지만은 않겠지만, 다행한 건 우리가 평생 살아오며 품어온 몸과 자아 그대로를 지닌 채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나면 새로운 즐거움과 변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탐험하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머지않아 당도할 노년의 세계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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