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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희망 수업 -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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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한국인이 '통섭'을 세계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빔밥은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음식이지만 외국인들은 보고서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많은 채소를 한 번에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이 서양에는 없습니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인데 넣고 슥슥 비비면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이 납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고민에 빠집니다. 다음에는 뭘 먹어야 맛이 조화로울까 하면서요. 섞는 것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57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가진 것 하나 변변히 없는 나라였는데,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 때문이다. 우리 부모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교육에 투자한 덕에, 죽어라 공부해서 이런 기적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런데 교육으로 흥한 이 나라가 교육 때문에 망할 것만 같다면 어떨까.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한 인재가 창의적 인재라는데, 학교에 가면 갈수록 오히려 창의성이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공생보다 끝없는 경쟁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타인과의 경쟁에서 기필코 승리하는 것보다, 서로 소통하고 숙론하며 통섭을 이뤄내는 배움이 더 필요하다는 거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25년 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고, 해마다 100회 이상 강연을 해왔다. 환경·생태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현안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화두를 끊임없이 제시해 온 그가 이 책에서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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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자주 나타나는 천재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아인슈타인도 아닌데 아인슈타인처럼 한다면 그것처럼 바보 같은 전략이 어디 있습니까? 아인슈타인이 아니라면 피카소처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내 앞에 주어진 작은 일들을 모두 열심히 하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처럼 어느 날 한 번에 기가 막힌 걸로 대박 터트리려 하지 말고, 피카소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걸 성실하게 정말 열심히 해보는 겁니다. p.259
이 책은 총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섭, 공부, 책읽기, 글쓰기, 소통, 진로, 생태적 삶 등 11가지 삶의 주제에 대해 최재천 교수가 전하는 ‘희망 수업’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화제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초래할 변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이 AI의 지배를 받게 될 거라는 전망부터,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고 말이다. 최재천 교수는 이에 대해 직업이 사라지는 건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지만, 할 일이 없어지면 일을 만드는 게 우리 인간이라고 말한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일을 새롭게 정의 내리면 된다는 말은 긍정적이면서도, 현명한 생각이다. 평소에도 최재천 교수의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인데, 언제나 그렇듯 매우 시의적절한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주셔서 좋았다.
독서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다. 말랑말랑한 책만 읽지 말고 모르는 분야의 책과 씨름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어야 도움이 된다고,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말이다. 물론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하는 독서도 필요하지만, 1년에 책이라고 겨우 한두 권 읽는다면, 자기계발서나 말랑말랑한 에세이만 읽기에는 좀 공허하지 않느냐고, 눈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취미 독서'를 해야 하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독서는 빡세게 해야 하는 거라고, 취미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느니 나가 노는 게 낫다고, 기획해서 책과 씨름하는 게 독서라는 말에 굉장히 공감이 되었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빡세게 읽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또 백세 시대에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최재천 교수의 조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서로 다른 공부를 하고 서로 다른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에게 배우며 통섭을 이뤄내야 한다는 최재천 교수는 그 방법론으로 '숙론'을 제안한다. 이 책에 소개된 11가지 삶의 주제들을 숙론의 주제로 삼아 함께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