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유영만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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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방파제만 만들어 놓고/파도치는 물결만 관망하던 당신은/갑자기 찾아드는 뒤늦은 오후에/내일도 꿈꾸게 될 아슬아슬한 기적만 상상할 뿐입니다.//살아온 모든 책의 페이지마다/우여곡절의 악보로 채워진 한 권의 책을/밤새 온몸으로 읽어도 다 읽지 못하고/여운이 페이지마다 감도는 불멸의 습작은/당신에게는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미완성입니다.              p.25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의 신작이다. 당연함에 물음표를 붙이고, 버려진 말들을 찾아 모으고, 타성과 관성에 젖은 언어를 세탁하고, 모든 절망의 언어를 희망의 단어로 바꾸고, 우울함의 그림자에서 빛나는 자아를 찾아내는 여정이다. 왜 그는 시를 놓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까. 


그는 삶이 시답지 않아도 사람은 시답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처럼 행과 연을 나누며 쓰였지만, 산문처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시적 언어’의 힘을 탐구하는 상상력과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시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사랑'은 추상명사이지만, 이 책 속에서는 동사로 변신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다. 여러 가지가 그리움에 줄기차게 입맞춤하며 하늘의 별빛으로 무르익어 가면, 그리움에 지쳐 나도 모르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그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선뜻 시에 손이 가지 않았다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잘 읽히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시적 언어를 만나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며 낯설다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할 것이다. 덕분에 시가 이렇게 쉽게 이해될 수도 있는 거구나 깨닫게 되어 시집을 찾아 읽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칸트를 읽다가 길을 잃고 카페에 들려 냉수를 마십니다.스피노자를 읽다가 휘둘리는 감정에 몸을 던지고/니체를 읽다가 욕망의 사다리를 만납니다./플라톤이 새벽같이 일어나 이데아의 세계를 건설하고/아리스토텔레스가 밤잠을 설치며/현실에서 진실을 찾으라고 설파하는 정언명령 사이에서/저녁노을은 붉게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허공에 던집니다.              p.170


 

시는 은유에서 시작해서 은유에서 끝난다. 시만 은유를 독점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유 없는 시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지만, 시인은 태어나야만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저자인 유영만 교수는 자신이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늦은 밤의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시인은 될 수 없을 지라도, 시적인 사유를 하고, 그것을 언어로 빚어내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언어는 우주 안에 흩어진 채 존재하는 '있음'들을 하나씩 불러 이름을 주고 그것에 실존을 입혀 누군가에게 건네는' 거라고 어디선가 읽을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언어가 어떻게 삶을 읽어 내는지,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우주와 존재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계절이 변하는 풍경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막막한 암담함과 절박함도, 견뎌야 하는 번뇌의 무게도 달라진다.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어제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게 바로 시적 언어가 가진 힘이다. 아스팔트의 견고함도 뚫고 일어서는 봄날의 풀잎을 보여 경이로운 기적을 깨닫고, 하늘이 뚫린 듯 멈추지 않는 폭우 속에서도 비 갠 후 맑은 날이 찾아올 것을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만드는 시적 언어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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