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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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형사가 죽고, 과거가 말을 걸어 왔다. 달리 생각하면 늙은 기자만 경험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

술에 취한 나카자와 요이치에게 종종 듣던 말이다. 필생의 대표작이 될 테마를 갖지 못한 기자의 서랍은 '쓰다 만 원고'로 넘친다. 이대로 몬덴은 월급쟁이로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안개 너머 저편을 알고 싶은 사건이 있다. 몬덴은 이것이 다이니치신문 기자로서 마지막 현장 취재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p.129



1991년 12월 11월 오후 6시 무렵,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남학생이 남성 2인조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얼마 뒤, 내일 아침 10시까지 2천만 엔을 준비하라는 범인의 연락이 집으로 온다. 현경은 수사 본부를 세우고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일본 범죄 사상 유례없는 전개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 날 네 살짜리 아이가 유괴당해 몸값을 요구받았다는 신고가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이다. ‘아쓰기’와 ‘야마테’에서 동시에 발생한 두 건의 아동 유괴 사건. 먼저 일어난 유괴 사건의 피해자는 무사히 구출이 되지만, 두 번째 유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3년 후 실종되었던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채 제 발로 돌아온다. 일본 전역이 발칵 뒤집히고, '공백의 3년'에 대해 언론에서 요란하게 떠들어 댔지만,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경찰 담당이었던 한 신문기자가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의 죽음을 계기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건 당시 2년차 경찰 출입기자였던 몬덴과 관할서 형사로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시를 하는 역할을 했던 나카자와는 플라모델 애호가라는 공통의 취미로 가까워졌었다. 유괴 사건 이후 지난 30년 동안 두 사람은 셀 수 없이 같이 밥을 먹으며 건담 플라모델에 대한 애정을 함께 나눴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지였던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에 서글픔과 허무함을 느끼던 몬덴에게 나카자와의 후배 형사였던 센자키가 말을 건넨다. 그는 한 주간지의 최신호를 건네며, 20년 전 유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아이가 현재 훈남 인기 화가와 동일인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준다. 당시 용의선상에 있었던 인물의 남동생이 화가였기 때문에, 유괴 피해자가 사실주의 화가가 되었다는 점에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효가 이미 지난 지 오래된 사건이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몬덴을 찾아온 것이었다. 





몬덴 지로라는 개인의 렌즈를 벗고 신문기자의 렌즈를 통하면 보이는 것도 있다. 가나가와 동시 유괴 사건은 엄연한 범죄였다.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자 세상에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범행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게 끌려간 어린 아이들의 공포와 절망은 확실히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불행이다. 형사들이 시효로 무기를 빼앗긴 지금이야말로 펜을 든 저널리스트가 미해결에서 '미(未)'의 글자를 떼러 갈 때다. 

"쓸 겁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p.343


미해결 사건이라면 보통 '범인은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 사건에서는 더욱 큰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것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는 미스터리였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3년간, 누군가 아이를 데려가 키웠다. 그런데, 남의 집 아이를 유괴해 딱 3년만 기르고 다시 돌려보낸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료는 자신의 부모가 경찰에게 의심받고 여러 주간지에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가 실려도 침묵을 지켰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범인이 잡힌 것도 아니었고, 피해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리고 이제 30년간 묵혀 있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월급쟁이 생활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제는 더 이상 취재 전선에 뛰어들 수 없었던 한 기자의 인생 마지막 취재는 과연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까.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죄의 목소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시오타 타케시의 신작이다. <죄의 목소리> 역시 일본 쇼와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이라 불리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었다. 31년 전 미해결 사건에 감춰진 삶을 그리며 논픽션을 능가하는 현실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나온 <존재의 모든 것을> 역시 실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시오타 타케시는 이 작품을 위해 경찰 관계자를 만나고, 당시의 지도를 구해서 동선과 장소를 일일이 되짚으며, 철저하고 집요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이라는 이력과 특유의 필력으로 탄탄한 구성과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질감 없는 시대에 실재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그려냈다.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달리 범인의 정체보다 범죄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가는 존재에 대한 사유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미스터리물은 가볍다는 편견을 넘어서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줄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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