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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여우전 - 구미호, 속임수의 신을 속이다
소피 김 지음, 황성연 외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05/pimg_7694311454558181.jpeg)
"참 아이러니하네." 석가가 매섭게 그녀를 노려본다. "나도 매분 매초 조금씩 내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래요?" 김이 빠진 하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신들에겐 유머라는 개념이 없나 봐요?"
"구미호에겐 신을 도발하는 게 아주, 아주 위험하다는 사실에 대한 개념이 없나 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는다. "나한테 말할 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언젠가 형사님 커피에 독을 타버릴지 모르니까." p.134
인간과 요괴들이 뒤섞여 사는 기묘한 도시, 신신시. 이곳에는 구미호, 해태, 도깨비, 귀신 등 많은 크리처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 가고 있다. 속임수와 배신의 신 '석가'는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신의 왕국인 옥황에서 쫓겨났다. 형이자 천계의 왕 환인은 석가에게 크리처의 법칙을 어기는 초자연적 존재들, 간단히 말해 망나니들을 제거하는 것을 거래 조건으로 내걸었다. 석가는 지금까지 10,052명의 망나니를 저승으로 보냈고, 2만명을 채워야 이승에서 받는 형벌이 끝난다. 한편, 1452살의 은퇴한 구미호 김하니는 한때 '주홍여우'로 악명이 높았지만,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살아있는 구미호 중 가장 많은 사람을 잡아 먹었고, 보통 여우보다 힘이 세 배나 세다고 알려진 주홍여우는 이제 도시의 전설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지만, 하니는 커피를 싫어했다. 그리고 인간의 세계인 이승을 혐오하는 석가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였다. 하니가 일하는 카페에 석가가 와서 커피를 주문하는데,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로 명령을 내리며 그녀를 열받게 만든다.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한 하니는 커피를 붙잡아 그에게 거칠게 들이밀고, 얼음과 커피가 쏟아져 석가의 얼굴과 옷을 다 적셔버린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못마땅해하며 앙숙이 되어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하니는 자신을 쫓아와 치근덕거리는 남자 두 명을 처리해버리고는 그들의 간을 꺼내 아직 간을 맛보지 못한 어린 구미호 소미에게 갖다 주는데, 그 일로 석가 형사가 주홍여우를 쫓게 된다. 하니는 그를 방해하기 위해 그의 조수를 자처하고 나서는데, 그렇게 성격도, 처지도, 스타일도 극과 극으로, 서로를 참아줄 수 없는 석가와 하니가 한 팀이 되어 사건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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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뀔 가능성도 있지." 그가 짙은 갈색 머리 한 가닥을 기다란 손가락에 말아 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한다. 하니가 이런 상황을 즐긴다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이가 될까, 하고 고민한다. 그를 속이고 있으면서도 그가 신경 써 주는 상황이 즐겁기도 하니까.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자백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녀가 구원받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다. p.409
1888년에 남자 오백 명 모두가 영혼과 간을 잃었다. 그 때 너무 과식한 관계로 주홍여우는 이후로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 왔는데, 자신을 먼저 공격한 남자들을 가만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석가와 하니는 이승을 파괴하려는 요괴 어둑시니와 수많은 남자들을 죽였던 전설적인 존재 주홍여우를 함께 추적하게 된다. 하니는 참아주기 힘든 신과 함께 일하면서 그를 자신과 소미와는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도록 조종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급기야 환인은 석가를 불러 주홍여우와 어둑시니를 죽이면 그 대가로 이승에서의 형을 감면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하니는 체리 타르트와 핫초코처럼 경이로운 것들이 존재하는 인간 세계를 사랑했다. 그래서 석가가 어둑시니를 죽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하지만 석가는 다시 신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주홍여우를 죽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석가는 점점 자신이 하니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얼굴에 커피를 내던진 구미호, 짜증나게 밉살스러운 구미호 김하니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하니도 점점 밀려오는 죄책감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석가를 분명히 속이고 있었고, 덕분에 그는 사기꾼 여우를 절대로 잡을 수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까, 액션 판타지가 될까. 이 작품은 한국 신화를 재해석한 판타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소피김의 작품이다. 섹시하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신과 아름답지만 발칙하고 건방진 구미호의 만남에서 오는 달콤 살벌한 케미와 이승의 존재와 저승의 존재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흥미로운 설정, 로맨스와 판타지를 사랑스럽게 섞은 작가의 능수능란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도깨비>, <구미효뎐>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