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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그 장소들에 처음 갔을 때는 놓친 게 많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간다면 어떤 것을 받아들이든 간에, 전체적인 경험에서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다른 장소들에서 밤을 보낼 것이고, 날씨도 다를 것이며, 그 사이 내가 읽은 책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 여행 이후 얻은 깨달음들과 내가 살면서 한 실패들도 분명 예전의 인식을 바꿔 놓을 터였다. 아무리 여러 차원에서 엄밀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곳을 아무리 여러 번 여행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p.48~49
배리 로페즈는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풍광을 발견하고, 서른 권 가까이 책을 펴냈다. 이번에 만난 <호라이즌>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장편 논픽션으로 남극과 일흔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탐사 하며 보낸 오랜 세월을 자전적으로 돌아보는 책이다. 무려 9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얻은 평생의 경험과 배움을 집대성한 이 책은 세상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력히 일깨워준다. 청명한 여름밤에 반사 굴절 망원경을 설치하고 머리 위 밤하늘의 세계를 탐험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이따금 보이는 새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고래를 관찰하고, 저녁 어스름이 다가올 즈음 길고 검은 대열을 이루어 바다 표면을 스치듯 날아 서식지로 돌아가는 새떼의 모습의 쌍안경으로 좇는 삶이란 어떨까. 배리 로페즈에게 여행이란 겉으로 명백히 보이는 것과 미묘하게 감춰진 것들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이 깔려 있는 패턴들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남극 대륙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무언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 빙관에서 소행성의 조각을 집어드는 일, 남극 뮤온 및 중성미자 감지 간섭계 프로젝트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는 남극점의 블루 라이트 터널을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지나가본 일, 크로지어곶의 거대한 펭귄 서식지, 미라가 된 물범의 이마에 손을 대어본 일. 이런 일들은 내가 다른 곳에서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경험을 존중하고 흡수하고 싶었고, 누구든 그 경험이 필요할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p.804~805
일반인이 살면서 남극에 가볼 일이 과연 있을까. 북미 대륙의 절반보다도 넓은 땅덩이인 남극 대륙, 그 대륙의 한가운데 남극점은 연 평균온도가 영하 50도에 이르며, 기온이 영하 40도 위로 올라가는 약 3개월 반의 하절기 동안에 운행 가능한 비행기로 대원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약 3킬로미터 두께의 얼음 평원 위에 자리해 기압이 낮으며, 수분을 거의 품지 못하는 극저온의 공기는 매우 건조한 사막 환경과도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인 셈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남극 대륙에 할애되어 있다. 햇빛이 약해 희미한 그림자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지만, 공기 자체는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만큼 투명한 곳이다. 남극에서 운석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특히나 흥미로웠는데, 소행성대에서, 화성에서, 달에서 온 조각들이 남극으로 떨어져 발견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해빙 밑에서 하는 작업 또한 흥미로웠다. 두께가 2미터나 되는 단단한 얼음이 뒤덮고 있음에도 그 아래 수심 약 20미터까지는 놀랍도록 빛이 잘 든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속에 빙산이 휘저어놓지 않은 영역에는 생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베리 로페즈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캐나다의 북극권에, 갈라파고스 제도에, 아프리카 케냐에, 남극횡단산맥의 어디쯤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의 글은 내가 앞으로도 살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체험하게 해준다.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구 곳곳의 풍경과 사람, 역사, 생물학, 인류학 등을 토대로 세계를 탐구하는 이 경이로운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