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
김랑 지음 / 달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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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다보니 꽃이야 계절별로 넘치게 많지만... 아침마다 눈 맞추고 말 섞은 아이들을 마구 꺾을 수는 없으니까. 이건 나와 꽃들의 약속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더불어 산다는 건 이런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당연한 애정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먼저 주어야 돌려받을 수 있고, 그건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다. 올 초에 게을렀던 우리를 타박하듯, 뜰 한편에 자리한 장미들에 병이 들었다. 매일같이 사과하고 미안해하며 뒤늦게 목초액을 뿌렸고, 허겁지겁 영양제도 주며 기도했다. 올해만 잘 버텨달라고, 내년에는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나의 기도와 바람이 장미들에게 잘 전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p.93~94


언젠가 SNS에서 여행지를 찾아 보다가 경남 산청에 유럽에 온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민박집이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마리의 부엌이라는 귀여운 이름부터 인상적이었는데, 몸에 좋은 제철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는 동화 같은 숙소라는 소개 문구에 사로잡혀 한 동안 지리산에 여행가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마리라는 이름은 꽃마리라는 야생화의 뜻으로 자세를 낮춰야 볼 수 있는 꽃처럼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자 민박집의 이름도 마리의 부엌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어쩐지 주인장을 만나보기도 전에 상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알록달록한 식용 꽃들로 장식된 음식들과 가지런한 상차림이 너무 예뻐서 언젠가 꼭 가봐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먼저 만나보게 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표지 사진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이 예쁜 책은 지리산에 자리한 아주 특별한 민박집 '마리의 부엌'을 운영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들처럼 열심히 생계를 살아냈지만 도시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이방인 같았다는 두 사람은 10년 전,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지리산 산청에 터를 잡았다. 집 주변에 가득한 나물들을 뜯어 이웃들에게 팔고, 근처 양봉장에서 일감을 얻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여유있고 평화로운 일상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끽해온 느긋한 즐거움을 손님들도 느끼기를 바라며 민박을 시작했고, 직접 채취한 신선한 나물들과 유기농 농사로 지은 쌀과 채고, 그리고 직접 담은 장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내었다. 시설도 훌륭하지 못하고, 인테리어라 할 것 도 없으며, 두 주인장도 입에 착착 감기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불편한 민박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마음의 여유를 품고 지낼 수 있게 진심을 다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거두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들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그 속에서 온전해지는 사랑을. 눈을 감고 생각하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광경이 따스한 그림 같다. 시골생활이 만만할 리 없지만, 순간순간을 넘기면 참 아름다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구나 깨닫는다. 솔직히 나에게 여유란 게 생기면 1순위로 그만둘 일은 곶감이지만,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진심을 다해 감 한 알도 허투루 대하지 않을 것이다. 고운 빛깔의 감은 우리에게 꿈이자 묵상이니까.              p.150~151


이 책 속에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들 가족의 소박한 여행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가족은 매년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30일에서 50일간 장기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딸도 함께 하다 보니 해마다 결석도 많았고, 시험을 못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제 대학에 다니는 딸이 그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 가족의 삶뿐만 아니라 여행에 대한 부분도 기사를 통해 접했을 당시부터 너무 부러운 부분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여행의 풍경들을 직접 만나고 보니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행은 보는 것, 먹는 것, 걷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덜 보고 서툴러도, 사람이 좋으면 결국 다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는 사실. '풍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순간은 영원이 된다'는 문장이 좋아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해두려고 한다. 




진달래, 유채꽃 등을 따서 만드는 화전, 포슬포슬한 쑥버무리, 여름철 노지 깻잎으로 담근 간장들깻잎장,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운 원추리꽃밥, 계절에 따라 제철 재료들로 토핑이 달라지는 더덕순피자 등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의 레시피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차려진 자연밥상 챙겨 먹는 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욕심 부리지 말고 억지 부리지 말고, 없는 것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는 삶, 역시 그러하다. 이들 부부가 지리산에서 찾은 행복의 실마리를 조금씩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작은 마당에선 춤추듯 향유하는 꽃들이 피고 지고, 시간과 계절을 달리하며 새들과 벌레들이 울고, 그 속에서 매일 작은 것들을 이루며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떨까. 밥 짓는 일이 무엇보다도 좋다는 아내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느껴지는 선의와 온기, 그리고 소소한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을 즐기고 감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힐링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마음의 충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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