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의 도입부는 강렬하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마시는 "새벽의 검은 우유"는 죽음의 은유로 읽힌다.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고통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무의식을 억압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비애와 고통, 불안과 절망의 무게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고통으로 가슴이 찢기는 듯하다. 독일에서 온 죽음의 명인, 사냥개, 뱀 따위는 그가 유대인으로서 겪은 죽음의 불안을, 즉 죽음의 무도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가스실에서 처형당하는 공포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p.150~151


장석주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가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굉장히 로맨틱하면서도 특별한 부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의 글을 만난 첫 번째 기억이다. 출간한 책이 100권을 넘고, 50년 가까이 시를 읽고 써온 그는 시집뿐만 아니라 산문집, 비평 등의 다양한 분야의 글들을 써왔다. 시인이라는 이력 때문인지 장석주 작가의 산문에서는 여백에서도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참 좋았다. 그런 그가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77편의 명시를 정성껏 가려 뽑고,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썼다니 이번 책은 꼭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들은 말을 모으는 자들이 아니라, 말을 버려서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의 바닥에 닿으려고 말을 지우고 빈자리를 만들면, 그 말의 빈자리에 시가 들어선다"고. 이 말만큼 시를 간결하고도 핵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와 닿았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시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그 문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시를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지만, 선뜻 시에 손이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장석주 시인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다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시가 이렇게 쉽게 이해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서문에서 '시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왔지만 그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고, 끔찍한 아름다움이 태동하는 순간'이라고 썼다.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만난 시들이 내게 그러했다. 





불행은 늘 멀리서 온다고, 불행의 총량은 누구에게나 균등하다고 믿었다. 살아 보니 그건 잘못된 믿음이었다. 나이 든 덕으로, 나는 불행이 균등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전생의 업도 아니라는 걸 깨쳤다. 불행은 우연이 빚은 사태이고, 가장 나쁜 불행조차 흩뿌려지는 빗방울같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방관자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책임은 없을까? 이웃의 불행을 아파하지 않고 무심히 흘려보낸 채 얻은 면죄부는 정당한 것일까? 이웃의 불행과 고통에 야박하게 군 것은 얼마나 고약한 태도인가. 타인의 불행을 무감각하게 소비하고 냉담하다는 것은 우리가 영악한 이기주의자라는 뜻이다.                     p.251


어느 소설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지만, 시인은 태어나야만 한다고. 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시는 은유에서 시작해서 은유에서 끝난다. 시만 은유를 독점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유 없는 시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시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의 언어들이 모두 은유를 통해서 빚어낸 것이니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하다. 저자의 사색과 통찰이 더해진 글이 우리를 시의 아름다운 세계로 천천히 이끌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월트 휘트먼, 메리 올리버, 백석, 윤동주, 김소월, 칼릴 지브란, 실비아 플라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파블로 네루다, 아르튀르 랭보, 김수영, 샤를 보들레르, 에밀리 디킨슨, 나태주 등등... 익히 들어본 시도 있었고, 처음 만나는 시들도 있었다. 시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돌아보고, 그리움이란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마음으로 끌어당겨 그윽하게 응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각박한 현실에 쫓기는 마음에 여유를 찾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한 자 한 자 읽고 되뇔수록 '시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시는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라는 제목처럼, 삶이 외롭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마다 더욱 적극적으로 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시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시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 왜 우리가 시를 읽어야만 하는지, 시의 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느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