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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엔딩 클럽 ㅣ 티쇼츠 2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여기까지 찾아와 놓고 죄송하지만, 제발 누가 좀 구해 주세요...... 간절하게 빌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없는 기적이 이곳에서 벌어질 리 없었다. 달리면서 양옆을 돌아봤다. 듬직하기만 하던 수림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울었다. 거친 욕설을 지껄이며 "괴물 미친 새끼."를 연발했다. 우리가 엔딩을 얕봤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죽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가만히 앉아서 닥쳐 오기를 바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p.83~84
모든 학교에는 괴담이 있게 마련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별관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괴담도 그중 하나였다. 제미는 괴담이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가정 불화로 인해 막막한 자신의 앞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또 가상 화폐 투자 실패로 오천만원을 잃었고, 엄마는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치며 칼을 들고서 아빠에게로 간다. 엄마의 행동은 순전히 위협용이었고, 아빠가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쯤 되면 제미는 자리를 피한다. 왜냐하면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 시작하면 그 공간에서 제미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날은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해져 간단한 세면도구와 복대형 전기장판까지 챙겨 집을 나온다. 기숙사에 있는 우등생 친구 연준에게 하루 신세를 지기 위해 학교로 향했고, 기다리다 생물실 실험대 밑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실제 괴담 속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끔찍한 게 다 진짜일 리 없다고, 꿈이었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다가 제미는 그 세계가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아질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라리 괴물에게 잡아먹혀 다시는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야겠다고 '초승달 엔딩 클럽'을 만들게 된다. 다음 보름달이 뜨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남았고, 차근차근 끝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학교 대나무숲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데뷔조에서 떨어지고 절망한 아이돌 연습생 환희와 학교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수림까지 초승달 엔딩 클럽의 멤버가 된다. 세 사람은 '죽고 싶다'는 공통점으로 모여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 한다. 마침내 디데이가 되었고, 그들은 계획대로 그곳에 도착하지만, 젤라틴 괴물을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만다. 죽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이들의 엔딩은 어떻게 될까.
정말 우리가 다녀온 붉은 생물실이 죽은 화문이 만들어 낸 저주의 공간이라면, 그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열쇠 역시 그쪽 세계에 있을 테다. 그리고 화문은 나에게 구해 달라고 말했다. 그건 스스로는 멈출 수 없다는 말이었고, 또한 멈추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화문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도망친 세상에 갇혀 버린 기분을. 족쇄 같은 모든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작은 아이를 이제는 편하게 해 주고 싶다고. p.136
위즈덤하우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짧은 청소년 문학 시리즈 '티쇼츠',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박서련 작가의 <퍼플젤리의 유통 기한>에 이어 이번에는 조예은 작가가 <초승달 엔딩 클럽>을 선보인다. <스노볼 드라이브>, <만조를 기다리며>, <적산가옥의 유령>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조예은 작가는 언제나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서사를 보여주었었다. 호러라는 장르적 요소를 매우 섬세하게 풀어내며 조예은표 새로운 호러 소설을 만들어내곤 했던 작가라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누구나 가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결국은 평범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예은 작가는 그런 십대들의 마음을 사려깊게 헤아려 괴상하지만 어딘가 뭉클한, 무섭지만 이상하게 다정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죽으려고 괴물을 찾아갔으면서, 어쩌다 보니 괴물을 구하고 싶어 계획을 세우게 된 이 작품 속 친구들처럼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아무리 절망스럽더라도, 불투명한 미래의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혼란스럽고, 걱정도, 고민도 많은 청소년들이 조예은 작가가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은 위로 받기를, 응원이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티쇼츠'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과 두께로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 할만한 주제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라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다. '독서가 좀 더 보편의 취미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책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