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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평점 :
“그 비극이 일어난 후, 비탄에 젖은 내 일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괴물처럼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운명에 감염된 사람 같았어요. 이웃들이 불과 몇 초도 똑바로 보지 못할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죠.” 회의실 안을 둘러봤을 때내 말에 공감하는 눈빛이 여럿 보이더군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괴물로 만든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을 받은 사람들. 자신이 너무나 비천한 존재라고 느껴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 오늘 밤 그런 사람 중 한 명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p.134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잘 알려진 매튜 퀵의 신작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이번 작품은 총기 난사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은 한 남자가 스스로를 비롯해 상처 입은 이웃과 마을을치유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서간체 소설이다. 정신분석가인 칼에게 고등학교 상담 교사인 루카스가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대답이 없는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 18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 칼은 루카스에게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는지, 루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그 이유가 밝혀지는 것은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이다. 그 과정 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날 어떤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던 것인지 퍼즐 조각을 맞춰 가는 것처럼 조금씩 알게 된다.
칼과 루카스 모두 참혹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다. 두 사람모두 그 사고에서 아내를 잃어 버렸다. 18명의 죽음을 불러온 비극이 왜 일어난 것인지, 열아홉 소년 제이콥은 총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날 왜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던 이웃들을 쏘려 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제이콥의 동생 앨리는 형의 죽음 이후로 루카스 집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한다. 루카스는 앨리와 함께 졸업 프로젝트로 영화를 준비하며 머제스틱 극장에서 비극이 있었던 그날 밤 거기 있었던 사람들 모두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자 한다. 괴물마저도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선과 악으로 편을 가르지 않는 세계를 그릴 이 영화는 비탄에 젖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앨리가 말했어요. “왜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들 말이에요.”
“자기에게 없는 걸 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후 우리는 방금 내가 말한 진실의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누워 있었어요.
앨리가 말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잖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은 엄마가 있는 것 같던데요. 우리는 그냥 운이 없는 걸까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p. 172~173
이 작품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잃은 남겨진 사람들, 가해자의 가족 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극이 벌어진 이후의 삶에 대해 보여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을 겪은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은 이들인 그것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참혹한 비극을 다루는 소설의 경우 대부분 비극이 벌어졌던 그 날에서 모든 서사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비극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비극은 벌어졌고, 돌이킬 수 없으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이미 죽었기에 이유도 알아낼 수가 없다. 그저 남겨진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고통을 털어놓고, 위로하며 보듬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맞잡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비극을 겪은 것이 혼자가 아니었고, 남겨진 것 또한 혼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은 작품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영혼의 가장 좋은 부분이 네 영혼의 가장 좋은 부분을 사랑한단다.” 라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루카스는 참사로 인해 아내를 잃었지만, 그 날 했던 행동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제이콥의 동생 앨리는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다. 게다가 형의 행동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도망치듯 자신의 집으로 와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한 루카스가 앨리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영화를 만들기로 하지만 그 과정 또한 순탄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루카스와 앨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영화라는 매개체로 함께 웃고 울고 마음을 달래면서 예술을 통한 집단 치유를 경험해나간다. 실제로 작가인 매튜 퀵은 오랜 슬럼프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극복하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칼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서 시련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 루카스의 모습에 작가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했을 거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진실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깊은 상실감과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삶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연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정하게 보여준다. 우리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작품이 바로 그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