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퀸의 대각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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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둘이 체스를 한 판 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물론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이에요.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모니카는 여전히 사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글쎄요. 그때 우린 어린아이들이었어요. 개성이 강한 두 여자아이가 지나친 경쟁의식을 느끼다 보니 벌어진 일이고요. 경기에 지고 분을 참지 못해 욱해서 저지른 행동을 나중에 후회했어요. 두 번째 만남에서는 내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그 아이를 이겼고요. 물리적인 힘이 아닌 다른 걸로도 얼마든지 상대를 능가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던 셈이죠.」              -1권, P.273~274


니콜 오코너는 생명 과학 수업 시간에 생쥐를 해부하는 야만적인 건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가 벌로 텅 빈 교실에 갇힌다. 혼자 있는 걸 견딜 수 없었던 니콜은 케이지에 갇혀 있던 생쥐 640마리를 탈출시키는 일을 벌이고, 그로 인해 중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게 된다. 같은 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만 6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뉴욕의 한 중학교에서 니콜과 동갑내기인 모니카 매킨타이어는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는 중이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럿이 떼를 지어 한 사람에게 달려드는 걸 참을 수 없었던 모니카는 소화기를 집어들어 그들에게 던져 버린다. 이후 학급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떨어지자 당선자인 아이의 머리를 잘라내어 결국 퇴학 처분을 받게 된다. 




니콜은 고립된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함께하는 집단의 숫자에서 나오는 힘을 믿는다. 반면 모니카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한 쪽은 집단에게 미래가 달렸다고 믿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개인에게 미래가 달렸다고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나오게 되면서 니콜은 아빠에게, 모니카는 엄마에게 체스를 배우게 된다. 모니카의 엄마는 딸이 감정에 휘둘려 너무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체스를 권했고, 니콜의 아빠는 딸이 체스를 통해 인간 무리를 운용하는 전략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열리는 체스 선수권 대회 준결승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물론 열두 살 소녀들은 앞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난 말이야, 인간은 게임하는 동안에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니콜이 체스보드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감히 현실에서는 엄두를 내지도, 용기를 내지도 못하는 일을 게임에서는 할 수 있지.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발전시킬 수도 있어. 게임하는 동안에는 남에게 밉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내리는 가치 판단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어. 게임에 집중할 때는 유년기의 상처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아픈 몸에 대한 걱정도 다 사라져. 오직 게임 그 자체만 남아.」                 -2권, p.29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여러번 인용되곤 하는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보고 상대를 파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되는, 영혼의 적,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누구에게나 한 명씩 있다고 말이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고, 최악의 적이 최고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그 문장이 이 작품 <퀸의 대각선>을 관통하는 서사이기도 하다. 




두 천재의 체스 대결이 메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개인의 힘을 믿는 모니카는 서구권의 정보기관들인 영국 MI5와 미국 CIA에서 활동하게 되고, 집단의 힘을 믿는 니콜은 집단이 강한 성향의 진영인 IRA와 KGB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IRA 무장 투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이란 핵 위기, 911 테러 등 세계사를 장식한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신념을 위해 팽팽하게 부딪친다. 현장 요원이 되었다가, 치밀한 전략가가 되기도 하며 역사를 뒤에서 쥐락펴락하는 두 여성의 승부는 스파이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기존에 만나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에서 등장했던 동물이나 신, 외계인, 새로운 인류 등이 나오는 대신, 이번 작품에서는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작품을 보여주어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현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이 작품 두 권으로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개인의 힘을 믿는 민주주의와 집단의 힘을 믿는 공산주의의 대립은 형태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극중 모니카와 니콜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극단적이라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두 사람의 신념 중에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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