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걸 은그루 웅진책마을 121
황지영 지음, 이수빈 그림 / 웅진주니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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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하나둘 그루를 쳐다봤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실수로 잠옷을 입고 왔나 싶어 옷도 살피고, 머리고 매만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루를 바라봤다.

뭔가 이상했다. 그루를 둘러싼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따뜻함, 온기, 봄바람, 이런 말이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그루는 흘깃흘깃 눈치를 보며 교실에 들어섰다.         p.43


교실에는 두 종류의 아이가 있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 친구들이 먼저 반겨 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그루는 그렇지 않은 아이였다.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었는데도 혼자 조명을 받은 듯 환하게 빛나는 시아는 언제나 아이들의 중심에 있는 아이였다. 교실에는 또 다른 두 종류의 아이가 있다. 교실에서 아이돌 춤을 출 수 있는 아이와 출 수 없는 아이. 그루는 출 수 없는 아이였다. 반면 시하는 학원에서 배운 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교실 뒤편에서 늘 춤을 추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루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새로운 안무를 늘 연습했다. 다만 남들 앞에서 나서서 춤을 출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일주일 뒤에 열리는 수련회에서 반별 장기 자랑에 시하의 팀과 그루의 팀이 함께 나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본기가 탄탄한 시하와 늘 춤 연습을 해왔던 멤버들이 있는 시하네 팀은 걱정이 없어 보였지만, 갑자기 얼렁뚱땅 모이게 된 그루 네 팀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반에서 가장 키가 큰 그루, 가장 키가 작은 아연이, 키는 그루와 비슷하지만 몸은 빼빼 마른 라희, 키도 중간, 덩치도 중간이지만 혼자만 남자인 세완이. 그루 빼고는 춤이랑은 거리가 먼 아이들. 


화려한 춤솜씨를 선보이는 시하네 팀과 비교하면 정말 의외의 조합처럼 보이는 그루네 팀이었다. 틈만 나면 책을 읽는 조용한 아연이, 인플루언서가 꿈인 SNS 중독 세완이, 못 말리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이지만 몸치 기운이 느껴지는 라희까지... 이대로 무대에 올라가면 결론은 단 하나였다. 망신. 망신 망신 대망신. 



그루는 살면서 이런 응원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그루의 주머니에는 블랙홀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루를 응원하고 있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아래에서부터 울려 퍼지며 그루를 받쳐 올렸다. 정말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루는 다시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 이제 시하가 저 종을 울렸다는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자기를 응원해 주는 아이들 앞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p.132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루는 종종 간식을 챙겨 주었던 길고양이 짝짝이를 만난다. 그런데 짝짝이가 준 선물처럼 발견하게 된 까만색 돌을 손에 넣게 되고, 그루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느 때처럼 학교 가기 싫다, 학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 그루에게 교감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건네고, 아이들이 하나둘 그루를 쳐다보며 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재감이 없던 그루가 갑자기 교실의 중심이 되어 버린 상황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알고 봤더니 짝짝이가 발견하게 해준 까만색 돌이 사실은 블랙홀이라 불리는 운석 조각이었던 거다. 블랙홀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일이 정말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을 가지게 된 것이 그루에게 정말 행운일까? 그루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블랙홀을 이용해서 장기자랑에 나가도 되는 걸까.  



아무런 노력 없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하루 아침에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우주에서 온 운석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말이다.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한 소녀가 전혀 꿈꾸지 않았던 걸 갑자기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유튜버이자 댄스 트레이너로 명성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아이돌 데뷔를 하지 못한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블랙홀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는 아랑 선생님을 비롯해서, 춤도 잘 추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있지만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댄스팀에 두 번이나 떨어져서 꼭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블랙홀을 탐내는 친구 시하까지... 블랙홀을 탐내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탐욕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투자한 시간과 흘린 땀방울의 무게만큼 언제나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없이 얻는 요행에 기대지 말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즐기는 것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블랙홀이 만들어 놓은 허상인 샤이닝 걸 그루와 매력은 없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뭐든 해내는 평범한 그루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사과처럼 매끄럽지 않아도, 감자처럼 울퉁불퉁해도 나는 나'라는 극중 샐러드보울의 노래 가사처럼 자신만의 색깔로 한걸음씩 앞으로 걸어나가는 것이 진짜 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나만의 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그루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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