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 - 복잡한 도시를 떠나도 여전히 괜찮은 삶
조여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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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 모든 허덕임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마음 편히 음식을 음미하지 못하고 숙제를 해치우듯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어떻게든 스펙을 쌓기 위해, 시험에 붙기 위해, 일을 해내기 위해 밥 먹는 시간마저 아끼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은 허덕이는 마음을 낳았고, 나중에는 허덕이지 않으면 되레 불안해졌다. 도시는 계속 나에게 강요했다. 더 열심히 하라고, 뒤처지면 끝나는 거라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다들 버티고 있는 거라고.                 p.33~34


아주 작은 틈까지 자본이 스며 있는 도시에서 벗어나, 기껏 차지한 평범한 정규직의 삶을 뒤로하고, 시골의 작은 도시, 아담한 동네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지 6년,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던 일들이 차근차근 실현되기 시작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펼쳐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대도시가 아니라 작은 소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는, 조금은 특별한 청춘이 여기 있다. 안정적이고 순탄해 보이는 인생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는 기분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나가떨어지는 느낌과도 같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공공기관에 입사한 지 2년 즈음, 도망갈 곳 없이 목줄로 묶인 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저자는 겨우 거머쥔 정규직 자리를 포기하기로 한다.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더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용기를 내어 가족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가족들은 그런 저자를 만류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른셋 인생에서 저지를 수 있는 최대치의 일탈을 하고 돌아온 시골의 일상은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그것처럼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손해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지냈던 도시에서의 삭막한 마음가짐이 자연 속에서 조금씩 치유된다. 집 앞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느긋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넉넉한 먹거리가 주는 힘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 건강, 물려받은 재산 등 사람마다 주어진 자원이 다르기에 살면서 체감하는 각각의 인생 난이도도 다르다. 세상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배경이나 조건 같은 한계는 뛰어넘어야 한다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며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일률적인 목표치를 제시하곤 한다. 그렇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밤낮없이 일해도 목표에 가 닿을 수 없는 보통들이 대다수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그 보통들이 너무나 거대하고 아득해서, 감히 꿈꾸지 못한 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p.105



그저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혹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참고 견디며 버텨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시골에서 직장인으로 살며 도시에서 살 때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갖고 싶었던 커리어를 경험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니 그야말로 소도시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부수어주는 책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발견한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대부분 공무원은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줄만 알았는데 색다른 정보였다. 임기가 정해진 공무원으로 연봉도 생각보다 높았기에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합격하게 되면서 소도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의성이라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시골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생활이란 어떨까. 이 책을 읽다 보면 굳이 '시골'과 '도시'를 구분하고, 스스로 선을 그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된다. 


저자는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고, 인규 유입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적극 추진하는 지역별 여러 정책을 활용하는 법을 비롯해서 소도시에 정착하는 과정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렇게 인구 1,000만의 대도시부터 50만, 10만, 5만을 고루 경험했다. 서울을 떠나 고향인 상주에서 농사를 도우며 슬로 라이프를 즐겼고, 의성의 군청에 임기제 공무원으로 취업해 시골 직장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 제주에서 직급까지 올려 훨씬 규모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물론 계속 제주에 정착하게 될지,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제는 어디에서 살더라도 어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에 정착해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는 곳을 바꾸는 것만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경험의 폭이 크게 확장된다면, 한번쯤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리얼 다큐 소도시 라이프! 지금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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